한국일보

미술시간의 추억

2014-03-2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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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가면서

▶ 강 신 용

여러 해 미술대회 시상식에 참석했다. 동포 청소년의 마음속에서 태어난 한국에 대한 그림이다. 엄마 아빠의 한국이 아이들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미술 작품들이다.

이번 시상식에는 축사할 기회가 있었다. 수상자 가족들로 강당은 가득 차 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처럼 사랑하는 마음을 아이들의 가슴에 꿈과 희망으로 그리고자 노력했다.

가족을 위하여 기념사진도 찍고 기록을 위한 단체사진도 찍어야 한다. 모두가 행복해 보인다. 순진한 미소와 꾸밈없는 표현이 부모들만큼이나 보는 이들을 행복하고 즐거운 시상식장으로 만든다. 어느덧 나도 고교 미술시간으로 돌아가 추억을 더듬고 있다.


고교시절 미술시간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새 학기 첫 조회시간에 교장 선생님께서 새로 오신 유명한 미술 선생님을 소개했다. 그분은 한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으신 김진명 선생님이다. 대학 교수로도 갈 수 있었을 텐데 고등학교 평교사로 오신 것도 그를 기억하는 생생한 이유이다.

미술 선생님은 마치 철학교수처럼 느껴졌다. 우선 헤어스타일이 미니 스커트를 자로 재던 살벌한 군사문화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장발이었다. 그의 눈길은 언제나 멀리 어딘가를 응시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 들었지만 북한에 가족을 남겨둔 월남 화가라고 했다. 선생님은 자연 속에 피어나는 소박한 풍경을 그림 속에 담았다. 기억 속 선생님은 자연에 묻혀 자연이 되어버린 외로운 모습으로 남아 있다.

운동장에 나가서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스케치북에 그려서 제출하는 날이었다. 옆에 있는 느티나무 측백나무 무궁화도 있으련만 내게는 소나무가 마음에 확 박혔다. 내 그림에는 크고 굵은 기둥과 소나무의 커다란 껍질 그리고 몇 개의 가지가 있는 소나무 한그루 뿐이었다. 그림을 보신 미술선생님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의 손길이 아직도 소나무 그림 위에 의문부호로 남아 있다. “너도 외롭구나”아이들은 고등학교 1, 2학년이 되면 거의 다 자란다. 덩치만 크지 하는 짓은 애들 같다고 하는 부모들이 있다. 이민문화 가정은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다. 이민 1세대와 2세대는 언어에서 사회활동까지 문화적 갈등을 많이 겪는다. 고생한 부모는 온실에서 자란 자녀들을 철부지라고 한다. 철부지들의 순수한 그림 속에 이민 가정의 희망도 아픔도 녹아 있다. 마음은 경험을 먹고 자라는 것 같다.

소 귀에 경 읽는다는 속담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머리속은 복잡하다. 옆에서 무어라 떠들어도 들리지 않고, 보아도 보이지 않으니 분명 뭔가 잘못되어 있다. 오감을 움직이는 뇌신경 조직이 어딘가 마비된 것 같다. 크낙새가 산다는 광릉에서 캔버스를 마주한 선생님을 보았다. 머릿속을 비우고 상념을 털어내고 화폭에 빠진 화백으로 그를 아직도 기억한다.

아이는 칭찬을 먹고 자란다고 한다. 말은 당근과 채찍으로 길들인다고 한다. 미술시간은 지나갔다. 지금은 어느 좋은 봄날을 지나고 있다. 청마의 꿈은 내려놓고 이제 밑거름으로 자리 매김을 한지 오래다. 현실의 꿈을 아이들과 미래의 화폭에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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