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현대인의 우선순위

2014-02-1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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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홍 (목사)

새해를 시작하며 서로가 인사한 것을 보니 모두 `복 많이 받으라’는 소리다. 한마디로 돈을 많이 벌리는 의미일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희망사항이다. 국가나 개인이나 다를 바가 없다.

한국도 경제 3년 계획을 발표하고 각 부서가 분주하게 뛰기 시작했다. 누가 장밋빛을 싫어하랴? 그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숫자보단 마음의 자세가 우선돼야 할 것 같다. 수의 개념은 클수록 흥미를 느끼게 한다. 우리가 어릴 때 ‘조’라는 수는 숫자에 불과했다.


그런데 요사이 한 회사가 일사분기에 조가 넘은 이익을 냈다고 하는 신문보도를 접한다. 그러면 우리의 우선과제가 경제인가? 란 질문에 우리의 대답은 긍정적이지 않다. 어딘가 모르게 빈 곳이 있다. 우리의 시선을 거기에 모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일 게다. 눈을 채우는 것보다는 마음을 채우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그런대로 하루 세끼에 대한 염려는 놓고 살아간다. 그것마저도 없어 굶주림에 지친 이웃이 많은데 말이다. 우리는 대체로 상위권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다고 여기서 만족하고 살자는 것은 아니다. 삶의 바른 기초를 다지면 내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지금 한국인들은 어디에서 살고 있든 세계인구중 상위 15%안에 들어있다. 절대빈곤에서 벗어나 배부르게 살고 있다. 그런 우리가 기대하고 나누어야 할 것들이 무엇이며 우리에게 절대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가치관의 형성이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것을 가졌어도 좋은 줄 모르게 된다. 그런 사람은 절대 행복해질 수가 없다. 바른 행복추구권 형성에서 오는 만족이 우리를 인간답게 감사하며 살게 할 것이다. 이것을 우선순위가 되게 하자.

이제는 살만하니 경제 우선순위보다는 그것을 빛나게 할 무엇이 없을까. 많은 지식인들 배운 자들이 아니 사회의 경험을 더 한 선배들이 어떤 틀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물론 창조과학은 절대 필요하다. 하지만 돈 만드는 기계적 창조과학이 아니라 인간다운 미래를 만들기 위한 기발한 생각 말이다. 이는 양심의 회복이 아닌가 싶다.

우리의 선배들이 가졌던 삶의 철학이 얼마나 위대하며 우리를 깨우고 있는지 돌아보자. 20세기 초반에 살았던 안창호선생의 철학을 들어보자. 그때 우리는 얼마나 헐벗고 배고프게 살았던가? 이때 이구동성으로 경제부흥을 외쳤었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경제회복보다 양심의 회복이 앞서야 한다고 하였다. 지금 우리는 4만 달러 시대를 앞당기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깨어지고 흐트러진 양심의 회복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인간의 가치를 알고, 있는 것을 가지고 바르게 사용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인간이 물질의 노예가 될 때 가장 비참하게 전략한다. 지금 우리시대는 돈의 가치가 생명보다 귀하게 생각돼서 보험을 타려고 부모나 아니 부부간에 죽이는 살벌한 사회를 본다. 가장 위험한 물건을 다루는 원자력 발전소가 돈 때문에 불량품을 사용하는 이 시대가 아닌가!

양심의 회복 없이 물질이 많아지면 점점 더 인간의 존엄은 떨어지고 물질의 가치가 상승해서 사람이 물질의 노예가 될 것이다. 지금 더 늦기 전에 산산 조각나는 양심을 치유하고, 바른 사고와 가치관을 세워가자. 지금도 늦지 않았다. 지금이 좋은 기회요 회복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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