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리한 기계들 어디서 왔나?

2014-02-10 (월)
크게 작게
허병렬 (교육가)

“드문드문 사람들이 있을 뿐, 대부분의 일을 기계들이 하고 있었어요” 공장 견학을 마친 분의 말이다. “아무래도 이런 현상이 점점 심해질 것 같군요.” “그럼 사람들의 일을 기계가 빼앗고 있네요.?” 모두 아무 말도 안했다. 1950년 중엽의 미국 시찰담을 듣고 한국에서 주고받은 대화이다.

가정생활에서 기계의 존재를 의식한 것은 초등학교 시절 ‘연필깎개’와 처음 만났을 때다. 어찌나 신기하고, 대견한지 연필이 작아져서 못쓰게 될 때까지 깎고 또 깎았다. 요즈음 학생들이 연필을 칼로 깎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이 사과는 어떻게 깎는지?


또 하나의 기계는 재봉틀이었다. 빠르고 보기 좋게 박음질을 하는 재봉틀은 가정을 공장으로 만들었다. 집안일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일감을 도와주는 모친의 모습을 보는 것은 퍽 자랑스러웠다. 그 시절에는 딸이 결혼할 때 재봉틀을 마련하는 것이 대세였다.

필자는 일 관계로 복사기에 대한 관심이 크다. 처음에는 복사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그러다가 이왕이면 페이지 순서대로 모아주기를 바랐다. 어느 날, 복사기 옆에 층층이 작은 선반이 마련되었다. 여기에 복사된 종이가 차례로 쌓인다. 전보다 편리해졌지만, 선반 수효보다 많은 페이지를 복사할 때는 같은 일을 두세 번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반들이 없어지고, 맨 위에 마련된 커다란 선반 하나가 눈에 띄었다. 복사된 종이들은 페이지 차례로 모여 선반위에 엇비스듯이 쌓인다. 이런 방법이라면 페이지 수나 찍는 부수에 아무 관계가 없다. 복사기가 수요에 따라 단 시간에 빠른 걸음으로 발달한 것이다. 하지만 연필깎개, 재봉틀, 복사기...등은 요즈음 사용하는 기계들의 조부모 격이다. 기계들의 발달이 눈부시다.

사람이 기계보다 우수하다는 증명이 있는가. 과연 사람은 기계보다 우수한가...생각이 꼬리를 이어가는데... “기계의 엄마는 누구지요?” “기계에 무슨 엄마가 있어?” “왜 없어?” “누군가가 만들었을 것 아냐?” 어린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이때 번쩍 깨달은 것이 있어 “그게 바로 사람이다.”라고 소리쳤다.

맞다. 기계의 엄마는 사람이다. 사람의 생각이 그 편리한 기계들을 만든 것이다.
사람은 생각한다. 생각하기 때문에 문명의 세계를 열었고, 지구를 우주에서 볼 수 있으며, 디지털문화를 활짝 펼쳐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창의력이 있는 특정인의 생각을 모두가 즐기고 있는 것이다.

창의력이 풍부한 사람들은 좀 더 새로운, 좀 더 편리한, 좀 더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려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우리들이 시대를 변화시키려면 일상생활에서 생각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연구 자료를 제공하는 일이다. 어린이들에게는 생각하면서 이루어지는 과정을 알 수 있는 현실을 보게 하고, 관계되는 자료를 제공하는 일이다.

어린이들이 작업을 할 때는 견본과 똑같이 만들거나, 거기에 자기 생각을 보태는 경우를 본다. 이럴 때 새로 보태거나, 견본과 다르게 만든 부분을 칭찬하는 것도 창의력을 기르는 방법이다. 처음부터 이런 취지를 알려주면, 신이 나서 나름대로 무엇인가 바꿔보려고 노력한다. 일본사람들이 모방은 잘 하지만,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를 반박하였다. “전에 있던 것에 새로운 생각을 보태는 것도 창작활동”이라고. 바로 이것이 연구의 시발점이다.

우리들에게 손재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힘이다. 손재주는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릴 수 있지만, 생각하는 머리는 독창적이기 때문이다. 창의력은 부드럽고 연한 분위기에서 성장한다. 기본 틀을 제시하고 이를 바꾸는 말놀이, 도구를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몸놀림, 여러 가지 자료를 마음대로 섞어보는 공예, 일정한 금액으로 살 수 있는 물건사기, 배당된 어휘로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말 만들기...등

놀이에 익숙해지면서 눈을 뜨는 것이 창의력이다. 결론은 기계가 사람들의 일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기계들은 사람들의 창의력이 만든 새로운 일꾼이며,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