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사랑으로 쓰는 글

2014-02-0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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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상(전 언론인>

<진실로, 미치도록, 철저히(Truly, Madly, Deeply)> 이것은 1990년 제작, 1991년 개봉된 영국 판타지 음악드라마 영화 제목이다. 죽은 애인을 미치도록 그리워하는 그녀에게 그의 유령이 찾아오는 이야기다.

언젠가 한국의 모 시인이 ‘시는 메타포’라고 했다. 맞는 말임에 틀림없겠다. ‘너머’라는 뜻의 희랍어 ‘메타(meta)’와 ‘(뭔가를) 지닌 사물이나 부분’을 의미하는 ‘포어(-phore)’를 합성한 복합어로 암시만 되어있는 비유, 은유, 암유를 가리킨다면 말이다. 그러나 정말 시인이 따로 있는 것일까.


여인들은 우릴 시인이 되게 하고 어린이들은 우릴 철인으로 만든다는 말이 있다. 실천 실행하고 사는 사람은 설교하지 않는 법이다. 자고로 부처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부처님이요, 돼지 눈에는 돼지로 보인다고 하듯이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에겐 아름다움만 눈에 띌 뿐이다. 그러니 미국의 철인 랠프 월도 에머슨의 말처럼 “어떤 언어로 무슨 소리를 해도 너 이상의 말을 할 수 없다”고 해야 하리라.

인류학적으로 고찰해보더라도 우리 원시 조상들이 동굴에서 살 때 건강한 사람들은 다 사냥하러 아니면 열매나 곡식을 거두러 산과 들로 나가고 불구자나 병약자만 동굴 속에 남아있다 보니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동굴 벽에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게 되었다 하지 않나.

현대 서양 문학사상 가장 정열적이고 감동적인 시를 썼다는 영국 웨일즈의 시인 딜란 토마스(1914-1953)가 그의 <런던에서 타죽은 한 어린애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겠노라>는 글에서 “너 좀 기다려 봐. 난 폭발할 때까지 죄를 지을 거야. 사람이 한 번 죽지 또 죽냐”는 그의 말대로 살다 죽은 것처럼 미쳐보는 것 말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모두 미쳐 사는 것 같다. 미치면 미치는 만큼 신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종교에 미칠 수도 있고, 예술에 미칠 수도 있고, 아니면 돈이나 명예냐 권력에 미칠 수도 있겠지. 돈, 명예, 권력 있는 자들은 남 보기에 좋아 보일 런 지 몰라도 남의 시기와 증오의 대상이 될 뿐더러 갖고 있는 돈, 명예, 권력을 남한테 빼앗기고 잃을까봐 전전긍긍 사서 고생하는 사람들인 것을 알 수 있지 않나.

종교에 미치는 것이 사람보다 허깨비에 홀리는 일이라면 예술에 미치는 것은 삶 그 자체보다 그 그림자를 좇는 일이 아닐까. 마치 사물이 그 그림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 진품보다 모조품을 애지중지하면서.

눈에 보이는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눈에 안 보이는 신(神)을 사랑한다는 것도 그렇고, 자기 자신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이웃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또 예술 한답시고 사는 흉내나 내면서 문화적인 귀족 특권층인양 행세하는 자칭 시인-문인들의 수박 겉핥기는 어떻고? 시 쓰고 글 쓰는 사람이 따로 있나? 아무나 사랑하는 가슴으로 또 아름다움을 보는 눈으로 쓰는 것이 시라면 사랑하며 사는 생활체험 수기 이상의 글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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