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연의 고리

2014-02-0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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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상(수필가/ 동양화가)

집안의 내력과 환경은 은연중 사람의 됨됨이를 만들어 가는 가 보다. 그런 과정 중에 만나는 인연들도 비슷하게 통하는 일로 연결되어 그의 삶의 바탕이 되는 것 같다.

내 유년시절 우리 집은 김장철전 햇살 좋은 날을 잡아 온 집안의 문창호지를 갈아주고 2년에 한번씩은 방마다 도배를 하면서 안방 다락으로 올라가는 넷짝 미닫이와 문 양쪽 두껍다지엔 산수화나 글씨를 붙였다. 지금 기억하는 것은 한번은 유연하게 뻗은 곡선이 아름다운 조부님의 전서체 글씨, 그 2년 뒤엔 친구이신 제당 배렴(帝堂 裵濂)의 산수화가 아니었나. 다음은 활달한 큰 글씨 넉자로 된 행서체와 또 조부님 글씨였다. 다락을 오르락내리락 거리면서 그 작품들은 일상의 나와 함께 있었던 것들이기에 정이 깊이 들어 가슴속에 각인된 것 같다.


인생의 만남은 참으로 오묘하다. 결혼 뒤 시부님은 고서화 골동에 매료되어 많은 소장품을 가지고 계시면서 늘 꺼내어 감상하고 연구하는 분이셨다. 동호인 친구분들과 차를 나누며 함께 즐기셨고, 거간인들은 진귀한 물건이 새로 나오면 감정 내지 판매목적으로 자주 출입하곤 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듯이 눈 풍년 귀 풍년의 근 20년이 흐르는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들었고 나 역시 고서화 골동의 매니아가 되고 말았다. 그 시절 KBS에서 방영하던 ‘진품명품’ 시간을 어김없이 보면서 흥미로움을 넘어 많은 공부가 되었다.

작년, 뉴욕에서 예전의 KBS ‘진품명품‘ 시간에 감정하시던 분을 모시고 한인들의 소장품을 감정해주는 행사가 열렸다. 행사 첫날이 주일이라 좀 늦게 갔더니 감정인이 나를 기다렸다고 해서 몹시 의아했다. 나는 그분의 성함도 잊었고 안면도 없었는데. 매산 김선원 감정인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성제 김태석 선생님 손녀가 계시다니 뵙고 싶었습니다.” “저의 선생님은 성제 선생님의 수제자 손재향님이시라 조부님을 여러 번 뵈었고 지도도 받았습니다.

해방후 여러 서예가들과 함께 대동한묵회(大東翰墨會)를 창립했을 때, 선생님께서는 학회의 직인으로 사방 5cm의 낙관을 인각하셨습니다. 2대 회장님이 제 선생님이셨고 3대째가 저에게로 넘어와 지금의 대동한묵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귀한 낙관은 제가 보관하고 있습니다. 성제 선생님의 인각은 그 당대 우리나라 최고이시지요. 중국의 원세개의 옥새, 해방후 건국초기의 우리나라 옥새 등 많은 인보를 남기셨지요.”

조부님 작고하신지 60년, 그분의 제자를 뉴욕에서 만나뵈니 인연의 고리는 얼마큼 긴 것인가. 새삼스레 인과률(因果律)의 법칙을 느끼면서 조부님을 회상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말씀의 시작은 그때 서예계의 이야기로부터 조부님의 전각, 글씨 이야기로 이어졌고, 그중에도 안진경체를 선호하셨고, 전서체는 그 당시 으뜸가는 필치였다고 극찬하셨다. 오로지 글 쓰시는 일과 지도하시는 일 만으로 일관되어 일반인에겐 많이 알져지지 않은 외골선비셨다고 한다.

우리는 제2의 고향, 미국에 뿌리내린 소수민족 중 한민족의 후예들이다. 고국에서의 조상의 인연, 부모의 인연은 우리에게 은연중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다. 좋은 인연을 만들어 가는 것은 가올 행복에 투자해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특별한 인연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길고 긴 세월 속에 꽃피우는 행복의 고리가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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