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링컨의 얼굴

2014-02-0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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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 (아동문학가/ 목사)

오는 2월 셋째 월요일(17일)은 대통령의 날(Presidents’ Day)로 공휴일이다. 본래 워싱턴의 생일(2월 22일)과 링컨의 생일(2월 12일)을 별도로 지키던 것을 하나로 묶었다. H. G.웰스는 링컨을 세계 6대 위인의 하나로 지적한다.

나는 링컨의 얼굴을 좋아한다. 특색있게 생기기도 하였지만 그 얼굴에는 성실과 정직과 인자와 강한 의지가 동시에 새겨져 있다. 그 얼굴에는 고생과 눈물과 땀의 자국이 역력하다. 그런가 하면 관대함과 이해심과 통찰력까지도 지닌 얼굴이다.
링컨처럼 고생을 많이 한사람도 쉽지 않을 것이다. 스무 살이 될 때 까지 그는 손에서 도끼 자루를 놓아보지 않았다. 직업만 하더라도 뱃사공 농부 노동자 장사꾼 품팔이 군인 우체부 측량사 변호사 주의원 상원의원 대통령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그렇지만 학교에 다닌 것은 모두 합쳐서 1년도 되지 않았다. 그는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었고 혼자의 노력으로 유명한 웅변가가 되었다. 그의 생애는 한 마디로 땀과 노력의 연속이었다. 링컨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항상 배우는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문학 수준에 있어서 셰익스피어와 성서 연구에서 전문가 수준이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열심히 배우고 부지런히 일하고 정직하게 살고 사랑을 나누어 주는 생활을 계속하였다.

1865년 4월 14일, 링컨은 부인 메리와 함께 포드(Ford)극장에 갔는데 연극 구경은 하지 않고 부인의 귓가에 이런 말을 속삭이고 있었다. “여보, 내 평생소원은 팔레스타인을 당신과 함께 여행하는 것이라오. 예수님이 거닐던 그 길을 나도 밟아보고 싶소. 나사렛의 그 길, 베다니의 그 길...” 그리고 링컨의 입에서 ‘예루’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흉탄이 날아와 그를 쓰러뜨렸다. 아마도 링컨의 최후의 말은 ”예수님이 걷던 예루살렘 길을 걷고 싶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예루살렘 길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하던 그 길이 아니었던가!

링컨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 군부 장성들 사이에 알력이 생겼다. 그 중에서도 가장 성미가 급한 각료는 국방부 장관 스탠튼(Edwin Stanton)이었다. 그가 장성들과의 불화가 심할 때 링컨을 찾아와 화풀이를 하였다. 대통령은 그에게 “말로 하지 말고 화나는 일들을 종이에 적어서 가져오라”고 하였다. 스탠튼은 링컨이 자기편을 들어주는 줄 할고 이틀에 걸쳐 종이 열 장에 미운 장군들에 대한 비난을 적었다.
링컨은 종이를 받아들고 조용히 말하였다.

“스탠튼 장군, 내가 이것을 읽기를 원하오? 그렇지 않으면 읽지 않고 휴지통에 넣는 것이 낫겠소?” 잠간 대통령의 얼굴을 쳐다보던 스탠튼은 싱긋 웃으며 자기 손으로 종이들을 구겨 휴지통에 넣었다. 링컨이 원칙을 지키면서도 부하들의 인화를 가꾸는 능숙한 솜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워싱턴에 가면 링컨이 애독하던 성경이 보관되어 있다. 그런데 그 성경에는 손때 묻은 자국이 있다. 여러 번 같은 장소를 손가락으로 눌러서 생긴 자국이다. 그 곳은 시편 34:4이다.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링컨이 남북전쟁과 그의 평생에 걸친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여 주셨다는 확신과 모든 두려움에서 건져 주신다는 소망을 가지고 살았음을 손때 자국이 나도록 되풀이하여 읽은 것을 알 수 있다.

링컨의 어머니 낸시는 아들이 겨우 말을 시작하게 될 무렵부터 매일 성경을 읽어주었다. 그녀는 링컨이 아홉 살 때 세상을 떠났는데 마지막 순간 아들을 베갯머리에 불러 엄마가 죽어도 성경을 읽으라고 유언하였다. 그녀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잠언 22:6)는 성경 말씀을 실천한 어머니였다. 링컨은 “어머니의 기도 소리는 통나무집 구석구석에 깔려있었다.”고 회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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