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인정신

2014-01-2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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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

도자기 장인은 가마 속의 불꽃에도 질(質)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가마에 집어넣는 장작도 꼭 송진이 묻어나는 소나무만 베어다가 쓰며, 가마 속의 온도가 섭씨 1,350도를 유지하도록 각별한 신경을 쓴다. 가마 속의 도자기가 고열을 받아 유약이 녹아내리면 표면에 신비한 산화나 환원작용이 일어나 우과청천(雨過晴天)의 비색을 지닌 명품 도자기로 태어난다. 이렇게 섬세한 장인정신의 바탕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는 높은 예술성이 있어서 부르는 것이 값이다.

지금은 거대한 샤핑 몰이 자리 잡고 있지만 오래 전 동대문 건너 편 자리는 시외버스 터미널이었다. 그 당시 터미널 매표소 옆에 앉아서 방망이를 깎아 파는 한 노인이 있었다. 을씨년스런 어느 날이다. 버스를 기다리던 한 사람이 일감이 없어 맥없이 졸고 있는 노인에게 방망이 하나를 빨리 깎아 달라고 주문했다.


주문을 받은 노인은 재빠른 손놀림으로 방망이를 깎기 시작했다. 그런데 방망이 윤곽이 다 잡힌 다음부터는 이리 저리 둘러보면서 마냥 늑장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옆에서 초조하게 지켜보는 사람이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된 것 같은데, 계속 손을 대면서 다듬기만 한다.

버스 출발 시간이 임박하여 마음이 다급해진 주문자는 이제 그만하면 되었으니 그냥 내어 달라고 재촉을 했다. 그랬더니 노인이 벌컥 화를 내며, “밥솥의 밥이 끓을 만큼 끓고 뜸도 들어야 밥이 되지 재촉하고 안달한다고 생쌀이 밥이 되나.”
두 사람이 승강이 벌리는 동안 버스는 출발했고, 주문해놓고 기다리던 사람이 그냥 갈 수도 없으니 참 난처하게 되었다. 주문자는 하는 수 없이 서둘러 재촉하는 일을 단념하고 “그럼 기다릴 테니 마음대로 깎아 보세요.”라고 말했다.

노인은 비록 길가에 앉아 방망이를 깎고 있을망정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일종의 장인정신이었다. 단지 돈 벌이로서 이 일을 하고 있었다면 대충대충 깎아 하나라도 더 팔수 있었겠지만 이 노인은 그렇게 함부로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 후에도 노인은 한참 동안을 더 다듬고 깎아 낸 후에 방망이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이리저리 돌려 본 다음, 다 되었다고 내 주었다. 주문자는 값을 치르고 버스 문 앞에 다가와 뒤를 한번 돌아보았다. 노인은 그제 서야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휘어진 허리를 펴며 만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순간 주문자는 노인의 고집스런 모습에서 존경스런 장인정신을 느꼈다.

사람들이 요즘처럼 어려운 때가 없었다고들 말한다. 오일 파동이나 IMF 때보다 몇 배 더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어렵더라도 터미널 노인처럼 치열한 장인정신만 살아 있다면 안 될 일이 없을 것이다.

장인정신은 어디서 어떻게 생성되는가. 신선한 놀람(awe)과 경이(reverence)에서 장인정신은 발출된다. 모세가 대표적 인물이다. 그러나 모세가 80살의 높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장인 정신으로 오래오래 빛을 발했던 진짜 이유가 있다. 그가 고오귀속(高悟歸俗)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리더인가. 모세처럼 이상과 현실의 평행선적 간극을 뛰어넘어 세상 속으로 들어가, 거기서 백성과 함께 흙을 묻히는 고오귀속의 리더가 되라. 그때부터 당신은 장인(匠人)급 리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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