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옛날을 말하고, 지금을 살리고, 미래로

2014-01-2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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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선생님, 우리 아버지가 어떤 학생이었는지 궁금해요.” 마주 앉은 청년이 질문을 하였다. “퍽 재미있는 학생이었어.” 대답을 하면서 상대가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 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가 어렸을 때 말한 것도 기억한다. “나 아버지 3학년 때 글을 읽었어요.” “어디서?” 되물었더니 “우리 학교 도서실에 있는 옛날 학교문집에 있어요.”하고 대답하였다.

옛적 한국의 가문을 존중하는 사람들은 족보와 문집이 갖췄다고 한다. 족보는 한 가족이 내려온 차례를 적은 책인 줄 알고 있지만, 가족의 문집까지 갖춘다는 것은 대단한 일로 안다. 그래서 실제로 이런 보물을 손으로 만졌을 때는 책장 넘기기도 조심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필자가 거친 세 학교에서 노력한 것은 ‘학급문집’이나 ‘학교문집’을 계속 발행하는 일이었다. 그 취지는 재학생들의 자라나는 마음을 담아 개인이나 학교에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다. 학생 수효가 많을 때는 좋은 작품을 우선적으로 실었지만, 가능하면 전원의 글을 싣도록 노력하였다. 그 결과는 1950년대 초 부산 피난시절의 글모음까지 있으며, 현재도 그 중의 한 권을 보관하고 있다. 여기에는 부산 천막교실에서 빗물이 양동이에 떨어지는 소리를 즐거운 음악으로 묘사한 글이 섞였다.

뉴욕에서 학교를 시작한 1973년부터 발행한 ‘학교문집’ 제60호는 역사적인 성장기록이다. 처음에 이를 시작할 때는 가정에 알리는 학교 통신으로 생각하다가, 곧 ‘학교문집’으로 성격을 바꿨다. 문집 발행 목적이 정해지자, 이에 따른 구체적인 방침이 뚜렷해졌다. 첫째, 1년에 1회 이상 발행할 것. 둘째, 학생 전원의 글을 싣고, 교사와 학부모의 글도 많이 실을 것. 셋째, 학교의 교육방침이나 뉴스 등을 알리는 가정 통신 역할도 겸할 것. 넷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문집 발행을 계속할 것 등이다. 이 방침을 지킨 결과는 개교 40주년에 제60호를 발행하게 되었다.

요즈음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단순한 글모음이 아닌, 시대의 흐름을 알려준다. 각별히 눈에 띄는 것은 글씨와 제본에 관한 것이다. 1970년대 초, 뉴욕에는 한국식자가 없었다. 알기에는 오직 몇 분이 한국 타이프라이터를 가지고 있어, 도움을 받았다. 얼마 있다가 사진식자기가 나왔고, 요즈음은 전자타자의 시대가 되었다. 제본기술에도 변화를 겪었다. 처음에는 각 페이지를 복사하여서 페이지 순서대로 늘어놓고, 여럿이 차례로 페이지를 맞췄다. 요즈음은 기계로 페이지를 맞추며, 제본할 때도 스테이플로 찍다가 드디어 전 과정을 인쇄소에 맡기게 된 것이다.

이러고 보면 60권의 학교문집은 40년 동안에, 글 쓴 학생들과 제작과정이 시대의 흐름을 빠짐없이 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역사다. 과거를 실제로 보고, 읽고, 만질 수 있는 물건이다. 또한 학교문집은 글을 통해 여럿의 마음을 모았을 뿐만 아니라, 함께 모여 일하는 즐거움도 주었다. 멀리 있는 친구를 사귈 수 있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하였다. 많은 글과 그림을 보기 좋게 편집하는 기술을 닦은 것도 이 덕택이다.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에 살고 있다. 한정된 생애지만 먼 옛날, 바로 오늘, 먼 앞날을 살 수 있는 지혜가 있다. 유물이나 서적으로 옛날과 대화하고, 지금 이 순간을 보고 만지며 즐기고, 미래를 디자인하며 오늘을 살고 있다. 지나간 학교문집은 바로 옛날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오늘의 학교문집 만들기는 삶의 과정이다. 내일의 그것은 밝은 색채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학교문집은 이렇듯 다양한 일꾼이다.

지난 문집을 들추다보니 김미수 시인의 시가 눈에 띈다. 제목 ‘한국학교’
오월 바람이 붑니다/허허로운 땅 뉴욕/아이들이 달려옵니다/토요일 아침/ 이 땅의 튼튼한 주인이 되기 위하여./장난꾸러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노랫소리와 함께/주말의 고요함을/실어 나릅니다./꽃이 되어/새가 되어/깃발이 되어/뉴욕에/그리고 거대한 미국 땅에/아름답게 피어납니다./한국학교는/아이들의/영원한/고향이 됩니다.(부분 생략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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