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言)의 힘과 말(馬)의 힘

2014-01-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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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영(목사)

어느 해 겨울인가, 아직도 채 잔설이 녹지 않은 공원을 산책하다 교복아래 엎드려 있는 설마(雪馬)를 본 순간 무의식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필름을 현상한 후 암실로 들어가 설마 내가 낮에 헛것을 본 건 아니겠지 하며 인화하는 과정에서 필름에 노출된 인화지가 현상액에 잠기자마자 완벽한 설마로 거듭나고 있었다.

이렇듯 말을 종이에 쓰면 글이 되고, 또 글을 읽으면 말이 되어 매스컴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래서 말 잘하는 사람은 방송국에 있고 글 잘 쓰는 사람은 신문사에 있는데, 글은 공간예술이라며 예술가를 자칭한다. 또 내가 한 말은 전파를 타고 보도 되고, 내가 쓴 글은 새벽을 깨우는 신문배달부가 신속 전달한다고 자랑들이다.
우리는 이들을 ‘언론인’이라 부르지만 한편 ‘말의 힘’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파수꾼으로도 부를 수 있다.


옛날의 신문 배달부들은 자전거를 타고 달렸지만 요즘엔 ‘말의 힘(馬力)’을 빌려 새벽을 달린다. 즉, 1마력(horse power)은 ‘1초에 75kg의 중량을 1개 높이로 올리는 힘의 단위’를 말한다. 요즘 175마력의 12만 마일된 늙은 차를 사서 운전하는데, 벌써 수년째 아무 탈 없이 잘 달려주어 고마운 마음으로 핸들을 쓰다듬어 주며 칭찬해 주는 습관이 생겼다. 칭찬엔 고래도 춤춘다고 말(馬)도 칭찬엔 약한지 작년에 싸이가 춘 ‘말춤’도 칭찬받아 추는 춤인지, 칭찬이란 말이 이렇게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이란 말은 너무 가혹한 주문인 것 같다. 말띠 새해엔 우리 자녀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말자. “넌 잘 할 수 있을거야” “ 넌 반드시 해낼 수 있어” “작년 뱀띠엔 실패했지만 말띠인 올해는 1등으로 뛸 수 있을거야” “넌 장래 큰 인물 될 거야”라며 말이다.

젊은 유대인 부부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우리 어린 과학자님” “우리 귀여운 문학가님”이라 하며 어릴 때부터 과학자, 문학가로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매번 노벨상을 유대인들이 휩쓸어가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래서 필자도 지난 돌잔치 때 손자에게 “나의 귀여운 닥터님”이라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다음 순서에서 돈을 잡지 않고 청진기를 잡는 것이다. ‘말의 힘’의 효과가 또 한 번 입증된 셈이다.

말(馬)은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않는다. 오직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 주인이 승리의 월계관을 쓸 때에야 비로소 ‘말의 힘’을 입증하는 것이다. ‘벤허’를 태운 그 순한 말들이 1등으로 골인한 후 월계관을 쓴 벤허가 충직스럽고 착한 애마들의 이름을 부르며 일일이 쓰다듬어주며 칭찬해 주는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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