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꼬마 영웅

2014-01-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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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10대와 20대가 우발적으로, 혹은 10세 미만 아이가 총을 갖고 놀다 발생한 총기 사고가 수시로 미국을 들썩이게 하더니 지난 20일 새벽, 겨우 8세 꼬마가 불구덩이 속에 6명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소식에 전 미국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생 타일러 두한 군은 마틴 루터 킹 데이 연휴를 맞아 할아버지와 시간을 같이 보내기 위해 뉴욕주 이스트로체스터 인근 펜필드의 작은 모빌홈을 방문해 9명의 가족들과 함께 잠들어 있었다. 새벽 4시45분경 모빌홈에서 전기누전으로 추정되는 화재가 급작스레 발생하자 제일 먼저 불길을 발견한 소년은 자고 있던 할머니와 네 살, 여섯 살 동생을 포함한 가족 6명을 침착하게 피신시켰다 한다.


화마를 피해 가족들과 밖으로 나온 소년은 이내 하반신 마비로 혼자 거동할 수 없는 할아버지가 안쪽 침실에서 자고 있고 삼촌도 빠져나오지 못한 것을 깨닫고 다시 치솟는 불길 속으로 뛰어갔다고 한다. 소방관은 소년이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침대에서 들어 올리려 시도하던 모습으로 질식사 한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미 트레일러 뒤쪽으로 불길이 번진 상태에서 ‘친구처럼 가까이 지내던 할아버지를 구하고자 한’ 소년의 용감한 희생이 놀랍다. 어머니 크리스탈 브루맨은 “내아들이 자랑스럽다. 하지만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은 아들이 돌아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 아이가 무사히 구출되어 성장했다면 얼마나 성실하고 책임감을 지닌 어른이 되었을 지, 주위 동료들에게 신임 받고 지역사회는 물론 나라와 인류를 이롭게 하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아직 채 자라지 못해 얼굴의 솜털이 보송보송한 소년의 죽음이 아깝고 안타깝다. 그동안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속에서 남을 위해 용기 있는 행동을 한 이들이 많이 있었다.

지난 2012년 8월에는 미 위스콘신 주 시크교 사원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에 어린 남매의 용감한 행동이 더 큰 희생을 막았었다. 백인우월주의자에 의해 시크교도 6명이 숨진 사고였다.

압하이 싱(11)과 여동생 아마낫 싱(9)은 사건 당시 건물 밖에서 놀다가 ‘폭죽’터지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시크교 참사의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였다. 한 남자를 본 남매는 즉각 사원 안으로 뛰어들어가 “총든 남자가 와요. 숨어요” 소리쳤고 10여명이 몸을 숨겨 목숨을 구했다. 총을 피해 일단 도망가지 않고 자신이 먼저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사원으로 달려가던 소년의 심장은 두려움으로 널뛰듯 뛰었을 것이다.
작년 8월에는 소총과 실탄 500발을 든 남성이 조지아주 초등학교에 침입하여 교직원 두명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총격전을 벌일 즈음, 한 용감한 학교 여직원이 그를 막아 제2의 커네티컷 샌디훅 참사를 막은 일이 있다. 앤터넷 터프는 이혼과 파산 등 순탄치 않은 자신의 인생을 털어놓으며 이 자리에서 죽고싶다는 남자를 설득, 결국 경찰에 순순히 투항하게 만들었다.

아직도 세상이 살만 한 것은 평범한 이웃 중 그런 의인들이 주위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나다니는 도로, 공원의 기념비나 의자 등에 붙여진 이름들이 바로 우리 이웃의 보통 영웅들을 기리고 있다.

전쟁 영웅이나 산불에 희생된 소방관, 테러리스트를 검거한 수사요원 등 특출한 영웅도 있지만 이렇게 본인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면서 조용히 목표를 달성하는 작은 영웅들은 세상에 희망을 선사한다.

수시로 맨하탄 셸터에서 홈레스 식사 봉사, 할렘 소년소녀에게 음악과 미술 재능기부, 1년에 한번 뿐인 휴가에 웨스트버지니아 빈민층 집 고쳐주기, 페루와 에콰도르 산악지대 주민 위생교육 시키기, 남미의 오지에서 의료봉사 하는 이들, 본인의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소리 소문 없이 이웃과 사회에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이들이 늘수록 세상은 아름다워진다.

이러한 작은 실천들이 좋은 세상을 만들고 있다. 이번에 꼬마 영웅 타일러 두한 군이 준 뜨거운 감동이 우리 주위의 평범한 영웅들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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