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원격진료가 필요한 때

2014-01-2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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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재옥(의사)

8.15 해방 후에는 8개 의과대학 밖에 없었는데 지금 한국은 39개 의대에서 매년 4,000명 이상의 의사들이 양산된다. 치열한 경쟁과 오랜 시간 힘든 공부를 통해 전문의 자격을 획득해도 희석효과 때문에 수입은 옛날보다 못하다. 다들 대도시에서 성공적인 개업을 원하나 의사, 변호사 등 ‘사’자 돌림이 경제를 주름잡던 전성기는 한 물 간지 오래다. 이제는 경제관념보다는 환자의 생명을 더 중시하는 인술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러나 전에도 아무도 원치 않았던 시골이나 섬에서 평생을 바친 훌륭한 의사들도 많다.

요즘은 많이 호전돼서 연평도에서 인천까지 쾌속정으로 두 세 시간 정도면 갈 수 있지만 50년 전에는 똑딱선 뱃길로 장장 13시간이 걸리는 그 길 하나 뿐이었다. 그 당시 응급환자 발생 시에는 꼼짝없이 그 섬 안에서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급성맹장염 자궁 외 임신 포탄폭발 등 응급수술은 현지에서 가능했다.


하루는 장 폐쇄증에 걸린 한 어린아이가 들어왔다. 마취의사도 없고 시설이 미흡해서 경비정을 통해 인천으로 후송하기로 했다. 파도치는 야밤중에 아이와 그 아이엄마는 바위에서 보트를 타고 함정위에 가까스로 올라탔다. 군함은 전속력을 내는데도 왜 그렇게 느리게 느껴지는지 몹시 안타까웠다. 아파서 보채며 울고 있는 아이의 창자는 점점 시퍼렇게 썩어 들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마침내 인천종합병원에서 개복수술을 받았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 시간을 너무 낭비한 것이었다.

현대의학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급진전 하고 있다. 어제 사형선고를 받았던 말기 암 환자들이 눈부신 새로운 치료법 개발로 인해 부활의 기적이 여기저기서 일어난다. 멀리 떨어져있는 심장마비환자도 EKG 심전도를 셀폰을 통해 전문의에 전달되고 즉각 화상으로 도움을 받는다. 응급 x-ray도 홍콩에 휴가 중인 전문의에게 원격속달이 되고 그로부터 정확한 진단도 받는다. 컴퓨터가 고장 나면 인도에 거주하는 하청업자에게 원격 전달되고 즉시 수리도 받는다. 전 세계는 손오공의 축지법보다 더한, 가까운 이웃으로 우리 앞에 다가서고 있다.

미국 오지에서 헌신하는 의사들도 자기 분야가 아닌 어려운 질병에 대한 것은 빨리 원격영상으로 큰 병원에 보내지고 위급 시에는 경비행기나 헬기가 즉각 동원된다. 한 생명을 위해 분초를 다투면서 치료에 임하고 있다.

외딴 섬 사람들이라고 현대의학의 혜택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TV도 보지 말고 셀폰이나 컴퓨터도 쓰지 말라는 것인가. 응급환자를 구출하기 위해 원격진료는 물론 헬기, 병원 중장비 활용 등 모든 가능한 치료방법을 다 동원해야만 한다. 원격진료는 응급환자 치료에 빼어놓을 수 없는 필수과목이다.

한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대한의학협회도 이 모든 진실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원격진료 반대 등 의학발전에 저해를 초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오리발을 내밀고 정부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 오죽 불통이면 이런 결론이 나왔을까, 한국의료계의 장래가 심히 우려된다.

필자는 오지에 사는 이들과 어려움을 함께 경험한 바가 있기에 조속한 시일 내에 데모가 아닌 평화스러운 해결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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