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어느 고미술 수집가의 불길한 예언

2014-01-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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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지하(사회1팀 기자)

이 남성은 억울하다고 했다. 화가 난다고 했다. 평범한 미국인들도 이런 일을 당하냐고 수차례 물었다. 이 남성의 사연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골동품을 보는 시각이 남달랐던 이 남성은 2010년 당시 인터넷을 통해 한 경매장에서 나온 매물을 보고 곧바로 국가 유물이라는 판단, 입찰을 통해 낙찰을 받게 된다. 그리고 낙찰 직후 주미대사관측이 ‘결제하지 말아 달라’는 통보를 해와 2주간 결제를 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결제 마감일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당장 한국 정부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대로 뒀다간 국가유물로 믿는 그 물건이 타민족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래서 주미대사관 측에 전화를 해 자신이 사겠다고 했다. 우선 본인이 사들이면 한국정부가 일처리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을 것 아니냐는 말도 덧붙였다.


10시간이 넘게 운전을 해서 미시건의 한 경매장에서 물건을 받아오던 그의 마음 한 구석은 뜨거웠다고 한다. 우리 유물을 찾아왔다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그 후로 전혀 연락이 없었다.

그로부터 약 3년 후인 지난해 그는 연방수사국(FBI) 요원에게 체포가 됐다. 그가 낙찰받은 유물이 장물이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구치소에 수감이 됐고, 이후 수감자들만이 탑승하는 비행편에 올라 오클라호마를 거쳐 미시건 연방 구치소로 옮겨졌다. 나이 60이 넘은 그가 견디긴 참 힘든 경험이었다.다행히 약 4개월 만에 연방검찰이 그의 사건을 기각시켰다. 문제가 됐던 유물은 반강제로 빼앗겨 한국 정부에 돌려졌다. 4만 달러는 물론 돌려받지 못했다.

뉴욕타임스는 그에게 ‘인디애나 존스’라는 별칭을 붙여줬다. 잃어버린 유물을 찾아온 그의 행동이 온갖 어려움을 뚫고 숨겨진 보물을 찾는 인디애나 존스와 닮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는 이후 뉴욕타임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여전히 억울함을 토로했다. 한국 정부에 속았다는 말과 함께.

대한민국 최초의 화폐인 ‘호조태환권’ 원판을 사들였다가 기소와 기각을 반복했던 윤원영씨의 사태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다. 기자는 그의 사건을 취재하면서 오랜 기간 다소 일방적인 윤씨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다시 말해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정확하진 않다. 그러나 그가 예언처럼 남긴 말 한마디만큼은 여전히 뇌리에 깊게 박혀있다. “이런 식이라면 미국 내 흩어진 유물은 절대로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이 사건 이후 상당수의 고미술수집가들이 자취를 감춘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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