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페넬로페의 직물

2014-01-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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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고대 왕국에 아름다운 행실로 유명한 한 여인의 이야기가 있다. 그녀는 스파르타 왕 이카리오스의 딸 페넬로페였다. 이타케의 왕 오디세우스가 그녀에게 구혼하여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페넬로페와 오디세우스가 결혼한 지 일 년 후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아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오디세우스는 돌아오지 않았고 생사여부를 알 수 없었다. 때문에 그녀는 수많은 구혼자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구혼자들의 청을 피하려면 그중 한명을 골라 결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페넬로페는 남편이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과 희망을 버리지 않고 차일피일 구혼자 선택을 미루었다. 그러기 위해서 그녀는 시아버지인 라에르테스의 수의를 짜면서 이 일이 끝나면 구혼자들 중 한 명을 고르겠노라고 약속한다. 그녀는 낮에는 수의를 짜고 밤에는 그 짠 베를 풀었다. 남편을 기다리기 위해 그녀는 이 일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구혼자들의 청혼을 물리쳤다. 그러다 보니 그녀가 짠 직물이 아주 훌륭한 베가 되었다. 길고 긴 숙달과 숙련이 빚어낸 결과였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페넬로페의 직물’이란 속담의 기원이다.

페넬로페의 직물이 좋은 결실을 맺자 그녀의 남편도 전쟁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아 섬으로 피신해 있다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오랜 세월을 인내하며 직물을 짠 페넬로페의 정신은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정신이 아닐까.

그녀의 베 짜기에는 멈추지 않는 도전과 용기, 미래에 대한 희망이 들어있다. 지치지 않는 투지와 인내, 끈기도 담겨있다. 또한 숱한 유혹에서 벗어나는 지혜, 남편이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과 신념, 그리고 기다림과 진실된 사랑이 배어 있다. 페넬로페가 끝까지 이런 정신을 갖지 않았다면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지 못하고 직물도 멋지게 짜내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2008년, 1930년 경제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재앙을 촉발시킨 맨하탄 리먼 브러더스 파산 사태 이래 우리는 심각한 경제적 고통을 겪어왔다. 이로 인해 한인들이 겪는 고난은 개인은 물론, 가정이나 업소, 직장 등 곳곳에 일파만파로 번져 나가고 있다. 더 이상 갈 데가 없다고 할 만큼 거의가 막다른 골목에 와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조금만 더 기다리고, 조금만 더 인내하고 노력하면 될 것을, 조금만 더 믿음을 가지고 도전하면 될 것을 우리는 너무 쉽게 포기하려는 것은 아닌지... 아무런 진전이나 결실을 보지 못하는 건 결국 모든 것이 나의 탓이다. 실제로 조금만 더 있으면 희망을 잡을 수 있는데도 그렇지 못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없지 않다. 어느 등산가가 산속에서 심한 눈 폭풍을 만나 산장을 찾으려고 헤매다가 산장 5미터 앞에서 더 이상 가지 못하고 죽은 것은 너무 일찍 희망을 포기한데서 나온 결과이다.

우물에 독을 풀어도 살아남는 고기가 있고,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살아나오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내가 어떤 정신으로 문제에 도전하고 이겨내느냐에 달려있다.
남극 탐험 길에 올랐다가 살인적인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영국의 탐험가 어니스트 새클턴이나 죽음의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유대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의 체험담은 끊임없는 기다림과 인내, 도전의 생생한 인간승리의 표본이다. 고난 없는 성공은 있을 수 없고 고통 없는 달고 맛있는 열매는 없다. 희망과 도전, 기다림과 인내가 없는 삶은 실패한 인생이다.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의 말은 새해 벽두 시련을 겪는 우리들에게 희망과 도전의 정신을 일깨운다. “비관론자는 매번 기회가 찾아와도 고난을 본다. 낙관론자는 매번 고난이 찾아와도 희망을 엿 본다” 올해는 도전과 기상의 상징인 갑오년 청마 해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우리도 페넬로페처럼 쉴새없이 직물을 짜는 마음으로 달리고 또 달려 모두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희망의 해가 되면 좋겠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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