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갑오년이여 어서 오라

2013-12-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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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1969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엔 방랑자인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곤 두 사람이 등장하여 신(神)과 희망의 상징이기도 한 ‘고도’를 기다리며 대화하는 장면이 계속된다.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이 작품은 블랙코미디로 연극과 영화로 상영돼 호평을 받은 바 있다.

1952년에 발표된 이 희곡은 당시, 20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허망과 인간 존재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는 비극적 현대를 조명한 실존주의적 작품이다. 21세기인 현재, 이 작품은 아서 밀러(Asher Miller)의 ‘세일즈맨의 죽음’과 함께 자아를 상실하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아주 잘 그려낸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인간은 기다림의 존재다. 기다림이 신이든 사람이든, 아님 희망이든 절망이든 인간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났고 기다림 속에 살다 결국 죽음마저도 기다리다 죽음 속으로 들어간다. 죽음 속에서는 또 부활을 기다리며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린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인간 모두가 기다리는 마지막 희망이요 절규다.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가 그린 연작 중 하나인 ‘절규(The Scream)’는 현대인의 공포와 불안을 아주 적나라하게 표현한 걸작으로 그 값은 1억1천만 달러가 넘는다. 절규엔 해질녘의 핏빛 하늘의 붉은 구름과 난간에 걸쳐 서서 하늘을 우러러 절규하는 한 사내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의 얼굴은 해골 아니면 유령 같다.

“친구 둘과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멈춰선 나는 죽을 것만 같은 피로감으로 난간에 기댔다. 핏빛하늘에 걸친 구름과 암청색도시와 칼을 보았다. 내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고 나는 그 자리에서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그때 자연을 관통하는 그치지 않는 커다란 비명소리를 들었다.”
뭉크의 고백이다.

인간의 기다림은 처절하다. 마치 절규와 같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곤이 기다리는 그 기다림 안에 고도가 있다. 그 Godot(고도)에서 뒤의 ot를 빼면 God로 하나님, 즉 절대자가 된다. 인간이 기다리는 절대자는 희망의 상징이다. 희망의 상징인 절대자가 기다려도 오지 않을 때 인간은 절규할 수밖에 없다.

절대자인 신(神)을 알고 싶어 신학까지 공부했던 빈센트 반 고흐는 그의 그림 중에 한쪽 귀를 붕대로 감은 자화상이 있다. 그는 한 여인에게 자기의 귀를 주었고 그 여인이 경찰에 신고해 끌려간다. 그런 그를 동네사람들이 정신병자로 몰아 결국 정신병동에 들어간 후 얼마 후 37살에 총기로 자살했다.

고흐는 신학을 공부하다 광산촌에 들어가 평신도설교자로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광산촌에서 노동자들의 학대받는 모습들을 보며 신에 대한 믿음과 그리고 절대자에 대한 희망은 점점 줄어들기만 했다. 광산서 설교자로 있다 떠난 그는 본격적으로 그림수업을 한 후 그림만 그리다 유작만 남긴 채 생을 마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이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요한복음 3장16절). 현대인의 불안을 소멸할 수 있는 길이 여기 있다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는 것이 기다림의 끝이라 기독교는 전한다. 기다리던 메시아가 아기 예수로 이 땅에 태어났고 그는 십자가에서 생을 마친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가 부활 후 승천한다. 기독교 신앙은 승천한 예수의 이 땅으로의 재림을 다시 기다린다.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처럼 재림을 기다린다. 기다림은 절규에 가까운 소망과 희망이다. 몸부림 같은 기다림이다. 핏빛하늘에 걸친 붉은 구름의 노을이 가신 후 찬란한 태양이 새벽을 몰고 오듯, 기다림은 절규다.
고도를 기다리는 두 방랑자, 뭉크의 절규, 고흐의 방황.

예수의 태어남, 죽음, 부활과 승천, 그리고 예수 재림의 기다림. 2013년이 지나고 갑오(甲午)년 말띠해가 3일후면 시작된다. 기다림 가운데 새 땅과 새 하늘이 다가온다. 시간과 공간의 흐름이다. 그 흐름이 곧 희망이요 소망이다. 시공의 흐름에 모든 게 녹아든다. 계사년이여 안녕, 갑오년이여 어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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