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람이 먼저다

2013-12-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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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뉴욕 소호의 프라다(Prada) 매장을 가본 적이 있을 것이다. 렘 쿨하스(Rem Koolhaas)가 디자인한 상업용 매장은 거대한 나무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중간에 마네킹이 있는 무대가 구비되어 있어 작은 음악회나 강연회를 열기 좋게 되어있다. 처음 가본 사람은 ‘도대체 가방과 옷 상품은 어디에?’ 하면서 한참 찾게 되는데 매장 뒤쪽과 지하의 창고 같은 곳에 그 비싼 가방과 옷들이 처박혀 있다.

상업과 문화의 혼합을 시도했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은 뛰어난 디자인이다 칭송해도 내게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것이 사람이나 문화보다 건축이 먼저 보이기 때문이다. 또, 최근 퀸즈보로프라자 전철역 주변으로 고층빌딩이 즐비하게 들어서며 허름하던 일대가 몇 년새 완전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되었다. 알루미늄 또는 고도의 기술이 접목된 복합기능을 지닌 전면 보호 유리를 재료로 한, 이 자유롭고 현란한 건축물들은 1990년대 우중충한 느낌의 콘크리트 건물들을 일시에 몰아내고 있다.


현대건축에서 유리는 투명성, 적극성, 혁신을 상징하는데 외관이 아름답고 미래지향적이며 독특한 구조물이라는 장점 외에 냉난방 효율과 반사 빛으로 인한 단점도 동시에 부각되고 있다.

공공건물이나 아파트, 은행 등 대형 유리건물의 탄생은 세련된 도회적 이미지를 주긴 하지만 건물이나 집이 주체가 되어서는 안된다. 전면 유리로 된 최신 건축은 모든 것이 훤히 다 보이면서 사람과 건물이 따로 노는 문제점도 보이는 것이다.

얼마 전 친구 몇 명이 모여 전면 유리 건물에 대해 얘기하다가 모두 출입구 유리문에 부딪친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안경을 낀 두 친구는 잘 닦여진 유리문이 없는 줄 알고 나오다가 그대로 얼굴이 부딪치면서 안경이 깨질 뻔 했다고 한다.

다른 친구의 남편은 맨하탄 32가의 은행에서 돈을 찾아 나오다가 유리문에 심하게 부딪쳤는데 이마에 밤톨만한 혹이 튀어나오고 코에 상처가 나서 피가 흐르는데도 일단 창피한 마음에 얼른 그 자리를 피해 나왔다고 한다. 그날 밤 뇌출혈이 발생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잠을 못자고 다음날로 주치의를 찾아가서 진찰을 받으니 며칠 동안 잘 지켜보면서 구토가 나거나 어지러우면 당장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고 한다.

사고 후 그 은행을 찾아가서 “민원차 왔다. 다른 사람들도 다칠 수 있으니 좀 더 확실히 ‘유리 주의’라고 써붙이면 좋겠다”고 조심스레 얘기했더니 은행 직원이 하는 말이 ”요즘 모든 건물이 다 유리로 되었다. 은행 로고를 유리 문앞에 붙여놓았는데 못보았느냐“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고 한다.

일단 앉으라든가, 다친 사람 이름이 무어냐, 상처는 다 나았느냐는 말도, 최소한의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왜 멀쩡한 유리문에 머리를 갖다 대었냐 ‘는 식의 대꾸에 아직도 기분이 풀리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리 건물이 최신식이면 뭐 할까,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먼저 아닌가. 오픈된 공간이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고 생활 하는데 편리하다 하여 사람이 뒤로 밀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건물이 아닌 집도 마찬가지다. 회사 사무실이건 집이건 모두 사람이 들락거리는 공간이다. 사람들의 냄새가 나야 그 건물이 살아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자면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건물이나 집이 아니라 살기 위한 곳이 되어야 한다.

친구의 남편이 유리문에 부딪치면서 혹이 날 정도니 천둥 번개가 치는 소리가 꽝 났다고 한다. 옆에 있던 누군가가 뛰어와 안 다쳤냐고 먼저 물어 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사람이 주인인 것이다. 사람이 주인이 되어야지 건물이 사람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건축은 시대의 거울이라고들 한다. 그 시대의 여러 생활 풍습과 사상, 행동양식 등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다. 이 건축물에 우리의 삶이 담겨야 하고 사람이 담겨야 한다. 건물의 외양에 눌리지 않고 사람에 대한 배려가 먼저인 건물에서 일 하고 생각이 담긴 집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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