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이레너스 상자

2013-12-2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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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누구라도 그를 처음 만난 사람은 그가 유명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지 못한다. 맨발에다 몸에는 낡아빠진 망토를 걸치고 있어 그는 언뜻 보기에 어느 집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세이레너스 상자와 같은 상(像)을 가진 사람이다.세이레너스 상자, 그 외관의 장식은 초라하지만 실제 뚜껑을 열어보면 그 속에는 그 집 주인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이 가득 들어 있다.

그는 이 조그마한 세이레너스 상자처럼 아주 초라하고 볼썽사나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행색은 소박하고 투박했으며 아무런 꾸밈이 없었다. 그러나 일단 발걸음을 멈추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거기에는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중한 사상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그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함없이 인류로부터 존경받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다.


어느 날 소크라테스는 한 저명한 지지자와 대화를 끝낸 뒤 이렇게 말했다. “그나 나나 결코 지혜로운 자가 아니다. 다만 나는 스스로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은 자기가 무엇이든 알고 있는 것처럼 거드름을 피고 있다.” 즉 나는 모른다. 나는 모른다는 것을 아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 말은 허세와 허풍,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 찬 이 시대 우리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말이 아닐까. 그는 그야말로 겸손의 현자였다.

2500년이나 흐른 지금 뜬금없이 그의 사상과 철학을 되짚어보는 것은 현대의 많은 철학자들이 그를 ‘현세의 재현’이라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말이다. 연말은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우리가 과연 올바로 살아왔는가. 그리고 새해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성찰하면서 마음을 다지는 기간이다. 소크라테스가 일생 보여준 그 고매한 가르침을 통해 잘못된 것은 바로 잡고 그릇된 것은 수정 보완해서 새롭게 변화된 자세로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하겠다.

올 한해 우리는 내실보다는 외관에 너무 치중하지 않았나. 가진 것도 없으면서 공연히 허세와 허풍을 떨지는 않았나. 아는 것도 없으면서 너무 아는 척 하지는 않았나. 조그마한 명예나 권력을 가졌다고 지나치게 교만하거나 거드름을 피우지는 않았나. 가질 만큼 갖고서도 더 움켜쥐기 위해 욕심을 너무 내지는 않았나. 남을 못살게 굴거나 상처를 주지는 않았나. 남을 미워하거나 시기하지는 않았나 생각해 봐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누구에게서도 돈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남을 가르치기 보다는 배우려고 했으며 끊임없이 진리를 탐구했다. 그는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교만하지 않고 겸손했으며 마음을 비웠다. 또 자기 이름으로 된 책 한 권 이 세상에 남기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평생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마지막 떠나는 순간까지 겸허한 자세를 보였으며 심지어 자기를 죽이려고 한 사람들까지 원망하지 않고 너그럽게 포용했다.
소크라테스의 생명은 그의 것이 아니고 온 세상에 본보기를 위한 것이었다. 삶의 바른 자세를 몸으로 실제 보여준 위대한 족적이었다.
소크라테스가 마지막으로 친구들에게 남긴 고언은 우리들의 폐부를 찌르며 진한 감동과 함께 교훈적 메시지로 다가온다.
“나를 기억하지 말고 진리를 기억하게. 나는 벌과 같이 가시를 남기고 싶지 않네.”
계사년 한 해가 저문다. 그리고 대망의 새해가 밝아온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운다 하더라도 기본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으면 모래성을 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고 하였다. 우리가 소크라테스처럼 현자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그의 행적을 거울삼아 더 나은 삶을 위한 자기 성찰과 각오는 해야 하지 않을까.

송구영신(送舊迎新)은 다사다난했던 묵은 한해를 보내면서 잘못은 반성하고 여러가지 문제점을 정리해서 새로운 것을 맞는다는 뜻이다. 이제 우리를 가로막는 허장성세, 과대포장의 2013년은 물러가고 갑오년 새해는 세이레너스 상자와 같이 속이 꽉 찬 생활로 우리 모두 풍요로운 삶이 되었으면 한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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