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성탄절에 얽힌 추억과 기쁨

2013-12-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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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열(목사)

크리스마스 이브엔 예나 오늘이나 모든 교회들은 성탄축제를 갖는다. 촛불 예배를 드리고 성극과 함께 무용으로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한다. 여기까지는 오늘날 우리 교회도 전혀 다르지 않지만 이브 의 축제가 끝난 후에는 오늘날과 전혀 다르게 이어졌었다.

예전 젊은이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집으로 가지 않았다. 삼삼오오 모여 교회당 근처에 있는 집사님, 장로님 댁을 찾아가 대문 앞에서 성탄 찬송을 힘차게 불렀다. 이른 저녁부터 시작된 캐롤링은 새벽까지 이어졌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아기 잘도 잔다.’는 밤새도록 불렀던 지정곡이나 마찬가지였다.


찬송 가사처럼 잘도 자고 마중 나오지 않는 가정에서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를 한 곡 더 불렀다. 일부 대원들은 맞으라는 대목에 목청을 더욱 높이곤 했었다. 그래서 받은 선물 보따리는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 커지듯이 커지기 시작했다. 달빛이 고고한 추운 동짓달의 겨울밤도 캐롤링은 온 세상을 훈훈하고 따뜻한 행복으로 감싸곤 했었다.

이렇게 모여진 선물들은 다음날 중,고등부 학생들과 함께 시설로 가지고 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들과 그리고 따뜻한 털신을 준비해서 갔었다. 강당에 함께 모여 캐롤을 부르고 선물들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순수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들이 받은 선물들을 가슴에 끌어 앉고 여기저기 자랑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바로 그 때 갑자기 한 아이가 마치 그네에서 내려앉듯 내 앞 의자에 가뿐하게 올라앉았다. 열 서너 살 되었을 남자아이였는데 하반신이 없었다. 두 팔을 이용하여 상체를 이동하곤 했다. 이 아이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 발이 없는 것을 보라고 했다. 지금 앞에서 선물로 나눠주고 있는 털신은 자기에게는 해당이 없다는 실망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난 순간적으로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우선 눈물을 닦아주고 다음에 올 때에는 꼭 포근한 신발대신 장갑을 갖다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래도 이 아이의 섭섭함은 가시지 않았다. 목도리를 풀어 아이의 목에 감겨주고 꼭 안아주었다. 며칠 후 털 달린 가죽장갑을 가지고 갔을 때 얼마나 좋아하던지...

그 아이가 지금 살아 있다면 5, 60대가 되었을 턴데... 성탄절 때면 늘 함께 캐롤링했던 친구들, 그리고 시설에 있던 그 사람이 떠오르곤 한다.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로다.(눅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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