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단 재미가 있어야

2013-12-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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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며 느끼며

지난 16일 하버드 대학교의 ‘폭발물’ 소동을 일으킨 한인 재학생 엘도 김(20)군이 18일 연방지방법정에 출두, 그 이유를 “기말고사와 별세한 부친의 3주기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고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렸다”고 변호인을 통해 밝혔다.

하버드대 교정이 있는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는 지난 4월 보스턴 마라톤 대회 테러가 일어난 보스턴 시내와 차로 10여분 거리다. 안그래도 ‘폭발물’, ‘테러’ 라는 말을 들으면 소스라치는 미 국민들이 이번에도 단단히 놀랐다.

연방검찰에 기소된 김군은 일단 보석금 10만달러를 납부하고 풀려났으나 하버드 대학 출입금지에 메사추세츠주를 벗어나지 못하며 유죄가 인정될 경우 5년의 실형과 3년의 보호관찰을 받는다고 한다.


최근에는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 소재 연방동부법원이 한인 의대지망생 심모(24)씨에게 징역 3개월을 선고했다. 심씨는 2011년 6월부터 지난 해 9월까지 지속적으로 본인의 의과대학 입학시험 MCAT 결과를 바꾸기 위해 미시간 대학과 미의과대학협회 서버에 수차례 해킹을 시도, 수십만 달러에 이르는 피해를 입혔다고 한다.

하버드 대학이면 모든 이들이 부러워하는 최고 명문 대학으로 본인도 모교에 대한 자긍심이 높았을 것이다. 그리고 의대를 가려고 할 정도면 대학 4년동안 파티 한번 마음놓고 못가고 학점의 노예가 되어 공부했을 것이다.
명문대 학업 스트레스와 주위의 기대에 대한 압박감이 이렇게 무모한 행동들을 하게 했다니 새삼 우리의 1.5세, 2세가 떠오른다. 안그래도 명문대에 진학한 한인학생들의 자살률이 높다고 한다.

대학생활이 학업, 인간관계, 진로 및 취업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이긴 하다. 경제가 어렵고 불투명한 앞날과 불안감이 더욱 성적에 매달리게 했을 수도 있다. 보통 가족 스트레스, 친구 스트레스 등이 모두 우울증을 증가시키나 유독 학업 스트레스만은 조절이 잘 안된다고 한다.

1989년에 나온 한국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있다. 매번 1등만 하다가 잠시 맘에 맞는 친구와 놀다가 다음 시험에서 7등으로 떨어지며 부모의 질책을 받자 자살해 버린 여고생 은주(이미연 분)가 남긴 말이 있다.
“난 로봇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고 돌멩이처럼 감정없는 물건도 아니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성적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자살하는 10대들이 속출하며 만들어진 이 영화는 부모의 뜨거운 교육열과 경쟁 시대의 세태를 보여주었었다.

그런데 이민 1세 학부모들도 자녀의 성적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나는 비록 거친 노동을 하고 살지만 너만은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가 엇비슷하게 간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학업과 진로가 본인보다는 부모의 기대에 의해 선택되었을 경우 부모자식간의 다툼이 끝이 없다.


실제로 아이비리그를 갔으나 도저히 적성에 안맞아 집으로 돌아온 아이, 성적 미달로 학교에서 퇴학당해 아버지가 하는 델리나 세탁소에서 일하는 아이, 병이 나서 쉬려고 휴학한 아들 딸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 중 “공부가 재미없어 학교가 싫어” 하는 1학년생 아이에게 “그래, 그럼 그만 둬, 놀아, 그런데 용돈은 네가 벌어라” 했다는 부모가 있다. 아이는 집 근처 샤핑몰에 취직을 했고 바빠서 점심도 제대로 못먹을 정도로 땀 뻘뻘 흘리며 1년을 일하며 톡톡히 노동자의 설움을 맛보았다고 한다. 1년 후 “이제 그만 공부 할래요”,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했더니 복학 후 2년째 모든 과목이 올A라고 한다.

학교 그만둬 할 수 있는 부모의 여유, 스스로 느끼고 갈 길을 찾은 아이, 그 이야기를 듣고 많이 부러웠다. 공부가 고통이 되고 억압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 가’, 이는 학문의 즐거움과 성취를 보여주는 논어의 첫 구절이다. 무언가 하고 싶고 흥미있는 분야를 아이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래야 그 공부가 재미있고 더 하고 싶을 것이다.


민병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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