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늘의 별따기

2013-11-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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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 신 용

새크라멘토에 다녀왔다. 비행기 밖으로 보이는 창공은 더없이 밝고 높다. 항상 북적대는 LA 공항을 보다가 시골(?)의 비행장은 역시 시골다웠다. 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고 물건 파는 매장도 적고 적당히 친절한 공항 직원들은 급할 게 없어 보였다. 한 시간만에 바뀐 ‘허둥지둥 빨리빨리 문화’에서 ‘Slow Life, 여유로운 삶’의 모습에 당황한다. 그래도 북가주의 상큼한 가을 생기가 풍선처럼 가슴을 채운다.

아직도 미국의 경제는 회색빛이다. 매일 낙엽처럼 흩어지는 보도는 아침부터 어둠이 차오르는 밤까지 암울한 회색이 배회한다. 회색의 뒤편에는 경기가 나쁘고, 회사는 어렵고 직원은 해고되는 생존의 절박함이 서성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고 뭔가 소망한 희망을 찾으며 지난 여러 해를 보냈다. 세계의 기업이 미국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이제 배경 색감이 조금씩 변하는 느낌이다.

한국의 신조어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소위 IMF 사태가 한국에 났을 때 38선, 45정, 56도라는 신조어가 유행했었다. 20대 중후반에 겨우 시작한 직장생활 10여년이 지나면 벌써 이직을 생각하는 나이가 38선이라고 한다. 자녀들이 한창 학교 다닐 학부형인 나이에 명퇴를 당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45정이다. 56세가 되도록 월급쟁이로 있다면 아랫사람이 볼 때 도둑질이라도 한 냥 눈치를 본다는 56도이다. 치열한 삶의 모습이 휴전선으로, 만화 같은 손오공으로 때로는 외로운 섬으로 그려진다.


이제는 지구가 이태백으로 가득하다. 이태백이란 이십대의 태반이 백수라는 신조어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지금은 미국에도 이태백이 너무나 많다고 한다. 처음 이태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한국에는 글 쓰고 시 쓰는 지망생이 엄청 많다고 오해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못 잡은 젊은이, 직장을 그만둔 이십대가 그렇게 많다는 표현이다. 주변에도 캥거루 가족이 많다. 부모에 의지해 사는 20대 자녀들이 그들이다.

요즘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고용시장에는 한 겨울의 눈보라가 지나가고 겨우 해빙기에 들어섰다고 한다. 별은 달기도 힘든데 따는 것은 더욱 어렵고 힘들다. 별이 아니 되면 달이라도 찾아보는 시절이다. 자신의 잣대로 자존심을 지탱할 것이 아니라 앞뒤, 좌우로 재보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다. 틈틈이 자신을 저울에 달아보고 심미안을 닦고 조여서 알차게 준비하는 것이 별나라에 다가가는 방법이다.

영화 ‘워낭소리’의 황소와 농부 최씨가 뉴스에 나왔다. 늙고 충직한 소는 할아버지 최씨의 친구이고 가족이었다. 해 뜨면 일어나 날이 저물 때까지 먹고 일하고 바보처럼 살아가는 평범한 영화였다. 삶의 철학도 삶의 목표도 없어 보이는 농부의 주름진 얼굴에 신은 그의 뜻을 새겼다. 사시사철 하늘의 일기에 따르는 황소의 거역하지 않는 삶에서 자연의 섭리를 신은 가르쳤다. 누렁이 황소를 보는 노인의 눈길은 신의 사랑처럼 순수하다. 워낭소리는 오감으로 느끼는 하늘의 소리이다.

하루의 1/3 이상은 일터에서 보낸다. 아름다운 일터는 내가 가꾸고 만들기에 달렸다. 열정이 넘치는 자세가 아름답다. 그리고 적당히 균형 잡힌 모습은 더 아름답다. 변명하지 말고 힘들고 어렵더라도 잘 준비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사는 것이다. 공연히 아닌 데도 없는 데도 척하지 않는 순수한 일꾼이 가장 아름다워 보인다.

가을의 낙엽은 새해를 준비하는 자연의 법칙이라고 한다. 더욱 강해지고 깊이 뿌리를 내리려면 겨울을 이겨야 한다. 당당하게 살아 십수년을 지켜야 한다. 조금 더 움직이고 조금 더 둘러보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별을 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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