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시인의 자화상

2013-10-10 (목)
크게 작게

▶ 강 신 용

샌타바바라의 하늘이 높고 맑다. 깊은 산속 촌 동네에 역사 깊은 사립대학에서 모임이 있었다. 오솔길 끝머리에 자리한 아담한 강의실에 장년의 학생들이 가득하다. 모두가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행복해 보였다. 강사는 한국의 유명한 시인 중 한 분이셨다.

시인의 목소리에 열정이 가득하다. 문학이 삶을 부르고 삶이 문학이라서 일까? 70대 시인은 현직 교수처럼 학생들 앞에서 신바람이 났다. 70여년 한 가족의 생사고락이 두 시간 동안에 기승전결의 흐름으로 한편의 사극을 보여주었다. 칙칙한 고통도 시커먼 가마솥 불길에 녹아내려 아름답게 술술 풀어낸다. 삶의 몸부림이 문학과 일심동체가 된 듯하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고 한다. 부잣집에서는 뒤웅박을 쌀 담는데 쓰고 가난한 집에서는 여물 담는데 사용한다고 한다. 옛적에는 여자가 어떤 남자를 만나 시집을 가느냐에 따라 뒤웅박처럼 인생이 결정된다는 옛말이다. 시인은 한국 여인들의 한 많고 설움이 많던 시절의 엄마를 회상한다.


시인도 공주들 틈에서 자랐다. 엄마는 공주 하나마다 다른 꿈이 있었다. 우리 집안에도 아들 없는 7공주 형수가 있다. 언제나 다소곳하시고 큰소리 한 번 치지 못하고 평생을 사신 분이다. 못난 형님과 산과 들로 딸자식 키우려고 해 뜨면 해질녘까지 일만하다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신 분이시다. 공주를 키우나 딸들을 키우나 엄마의 가슴은 사랑으로 가득 찬 꿈이 있다. 제발 좋은 신랑 만나 잘 살아 달라고 희망의 씨앗을 아이들의 가슴에 심는다. 사내자식도 초등학교만 겨우 다니던 시절에 큰 도시의 여자 고등학교에는 부잣집 딸들만 다닐 수 있었다. 서양식 신식 교육을 받는 지체 높은 집안의 딸들이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떠나는 딸에게 “니는 할 수 있을 끼다”라고 엄마는 희망의 씨를 심으며 보낸다. 엄마 꿈이 딸의 가슴속에서 자란다.

동정심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섭섭하다고 한다. 대학 2학년 때 같은 과에 세 명의 애들 아빠가 있었다. 스무 살짜리 학생이 애를 셋이나 낳은 것이다. 4대 독자니까 고 1때부터 자식 농사를 시작한 것이다. 미팅이나 농활이나 단체로 같이 놀기도, 빼놓기도,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한 동기생이다. 스무 살 애 아빠는 동정의 눈길이 가장 아프고 힘들었다고 애들 같은 우리들한테 고백한다.

딸 낳으면 비행기 탄다고 한다. 딸이 둘이면 금메달이고 아들 딸이면 은메달, 아들만 둘이면 동메달이라고 한다. 잘 나고 똑똑한 아들은 나라의 아들이고, 돈 잘 벌고 부지런한 아들은 장모의 아들이며, 못나고 속 썩이는 아들은 엄마의 아들이라는 농담이 있다.

시인의 손은 뒤웅박 농사꾼의 손 같다. 가냘픈 손마디가 마치 울퉁불퉁 닭발 같아 보인다. 뒤틀린 손가락 마디마다 인고의 세월이 그 손에서 보인다. 좌로 시어머니, 우로 지아비, 앞으로 자식 뒷바라지에 농사꾼이 살아온 모습처럼 보인다. 하나님은 일하는 손, 기도하는 손 그리고 사랑하는 손을 주셨다고 한다. 시인의 뒤웅박에 한 알 한 알 사랑이 알차게 들어서 보인다.

“니는 할 수 있을 끼다”라는 엄마의 염원 속에 한이 담겨 있다. 40대에 박사가 되고 대학교수를 하고 씨가 자라 큰 나무에 꽃이 폈다. 한의 색깔은 퍼렇게 멍든 색 같다. 어쩌면 소복 같이 하얀 색일 지도 모른다. 농사밖에 모르는 일꾼은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결실을 맺는다. 향기로운 꽃 냄새는 한도 덮고 색깔도 아름답게 바꾼다.

엄마의 노래로 강의를 마친다.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한 많은 세월을 녹이던 엄마의 노랫가락이 딸의 가슴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노시인의 짧은 강의가 길게 여운을 남긴다. 우리의 가슴도 엄마의 사랑으로 따뜻하게 차오른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