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환호 소리 가운데에는…

2013-07-01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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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세철 논설위원

“고대 로마인의 일상생활을 현대인이 들여다보면 어떤 평가를 내릴까. 포르노도 그런 포르노가 없다. ‘트리플 X’급 포르노로 보일 것이다.” 한 저명한 고대 로마사 전문가가 한 말이다.

로마의 정의(正義), 로마적인 미덕을 상징한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다. 그가 참석한 파티다. 그 파티의 피날레도 대개 이런 식으로 끝났다. “나체의 동남(童男), 동녀(童女)들이 욕실에서 대기하고 있다. 황제가 욕실에 들어서자 그 소년, 소녀들이 몰려든다. 그리고 역시 나체가 된 황제에게 온갖 성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남성중심의 착취적인 성문화, 퇴폐적이다 못해 포르노적인 성문화. 그리스-로마문화의 한 특징이다. 그 사회에서 여성과 노예는 인간이 아니다. 아기 낳는 도구이거나, 혹은 성적 쾌락의 대상물일 뿐이다.

그 로마사회에서 문화혁명이 발생한다. 인간의 성(性)에 대해 새롭게 의미가 부여되면서 여성의 위치가 확립된다. 이와 함께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으로, 예수와 교회의 신성한 결합에 비유됐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다.


종래와 전혀 다른 새로운 우주론이, 새로운 인간학이 제시되면서 그 문화혁명의 파장은 계속 확산, 서구문명의 기본 틀로 정착 된다. 인권에 바탕을 둔 기독교 문명이다.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밤새 기다리고 있는 그들. 레이디 가가의 공연을 기다리는 군중을 방불케 한다. 그 장소가 그런데 그렇다. 연방대법원 청사 앞이다. 그 날은 2013년 6월25일. 그 다음날 밤새 기다리던 군중으로부터 환호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일부 교회- 진보적 교단으로 불리는 교회-에서도 일제히 종이 울렸다.

연방대법원이 사실에 있어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20년 전만 해도 동성애문제는 정치인에게 있어서는 금기사항이었다. 그 분위기에서 제정된 게 1996년의 연방결혼보호법(DOMA)이다. 연방법에 의해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으로 규정 된 것이다.

85명의 상원의원이 이 법안을 지지했다. 당시 민주당 대통령도 지지했다. 그때의 그 절대다수상원의원과 대통령, 그리고 대다수 미국 국민은 연방대법원의 이 같은 결정과 함께 어느 날 졸지에 혐오 범죄자 같은 존재가 됐다. 마치 60년대 흑백분리주의자 같은 신세가 된 것이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불과 20년이란 세월동안 동성결혼에 대한 여론은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 것이다. ‘마치 댐에 구멍이 난 것 같다’-. 타임지의 지적이다.

여론조사를 실시할 때마다 동성결혼지지율은 높아만 간다. 여론동향에 민감한 것이 정치인들이다. 수년 전만해도 동성결혼 반대를 외치던 그들이 입장을 바꾼다. 동성결혼지지가 이제는 대세로, 오바마 대통령의 동성결혼 지지선언이 그 절정이다. 그리고 1년이 채 못 가 연방대법원은 동성애 지지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사태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해방을 지향하는 오늘날의 모든 반(反)주류적 물결은 하나로 귀결된다. 동성애자들의 투쟁이다. 동성애 운동은 과거의 해방운동과 흡사하다. 그러나 뭔가가 더 있다. 성적 정체감 위기를 겪고 이 시대의 첨병으로서 동성애자들은 새 시대 파악을 위한 새로운 우주론을 만들어 내야 할 처지에 몰려 있다.”20년 전, 그러니까 1993년도에 네이션지의 지적이다. 이 같은 지적과 함께 이 잡지는 성적 소수인 그들이 미국을 영원히 바꾸어 놓을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으로 내다보았다. 상당히 과장된 주장으로 보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예언처럼 들린다.

단순한 성적 도덕문제로 생각했었다. 동성애 문제는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문제, 영적 차원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젊은 세대가 교회를 멀리하고 있다. 기독교 우주론이, 또 인간학이 서구인의 정신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반면 동성애 권리보호라는 대의(大義)는 설득력을 더해 간다. 동성결혼 반대는 그 자체가 추악한 혐오범죄이거나 특정 종교의 편견이라는 교묘한 논리가 계속 확산되면서.

종교는 한 문화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 요소다. 어떤 문화든 금기사항이 있다. 그 금지하는 것, 그것으로 바로 그 문화가 지닌 정수의 정체감이 파악될 수 있다.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지지 판결은 이런 면에서 미국을 영원히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문화와의 결별에, 페이거니즘(paganism)적인 성문화가 지배하는 사회로의 회귀가 앞으로 미국 사회가 보이는 변화된 모습이 아닐까.

환호의 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이 대법원 결정을 인권의 승리로 치켜세운다. 정치계는 말할 것도 없다. 할리웃도 문화의 이름으로 축배를 높이 들었다. 그 축하잔치에는 진보란 이름의 종교지도자들도 함께 하고 있다.

그 갈채의 소음 가운데 섞여 벌써부터 이런 소리도 들려온다. “동성애자의 결혼권리가 보장됐으니 일부다처(polycamy)주의자들의 결혼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그 미국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어 보인다. 서글픈 느낌마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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