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달빛 아래 집짓기

2013-05-3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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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하는 삶

마침 보름달이 환했다. 메모리얼 연휴에 단기선교로 방문한 멕시코 티화나 외곽지역.

산길을 돌아 오르는 동네 꼭대기에서 바라보니 초여름 밤 둥그런 달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한인 선교사 두 분의 꿈으로 주춧돌을 놓아 시작된 현지인 교회와 유치원 건물은 기초공사와 블락 담벼락만 세워져 있는 상태다. 여기에 3층으로 다용도 건물이 들어서면 본격적인 지역 주민대상 활동이 펼쳐질 것이다.

나는 언제나처럼 치과장비를 들고 갔지만 이번의 주된 사역은 교회 건축이다. 전문 건축업 종사자인 교인들로 구성된 20여명 일꾼들은 생업을 놓고 모처럼의 연휴를 선교봉사로 드리는 사람들이다. 이미 현장은 망치소리와 컴프레서 돌아가는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여기, 여기! 투 바이 쓰리(2×3 ft) 올리고! 아미고! 호세! 장로님! 권사님! 안달레! 빠루! 이빠이 들어 올려! 우노, 도스, 뜨레스!여기저기서 스패니시와 한국말, 영어, 현장용어인 일본말들이 뒤죽박죽 아래 위에서 소리를 치고 서로 안 보이는 천장 합판 사이로 공구들이 왔다 갔다 한다.

자재를 쌓아둔 공터에는 어떻게 실어왔을까 싶도록 엄청나게 긴 목재들과 합판, 전기톱과 자동으로 못을 박는 네일 건, 그리고 설계도면이 먼지와 톱밥을 덮어쓴 채 제각각 놓여 있다.

지금은 서로 아무 상관없는 이 물건들이 어떻게든 합쳐지면 어느 날 집의 형태로 번듯 일어나게 될 것이다. 자정 가까워서야 일손들을 놓고 지친 몸으로 시멘트 바닥에서 단잠을 잤다.

이튿날 새벽 다시 기상! 길상호 시인이 집짓기 시에서 ‘가로 세로의 문살이 슬픔과 기쁨의 지점에서 만나 틀을 이루고’라 표현한 것처럼 산더미처럼 쌓였던 이름 없는 막대기들이 사람의 손을 거쳐 세워지고 뉘어지고 한 끝에 신기하게도 아름다운 공간을 이루어 나간다.

2층과 3층 계단 옆구리에 들어갈 목재는 서너 사람의 손길이 섞였다. 긴 목재를 가져다가 매 7~8인치 간격마다 삼각형 모양을 썰어내면 아름다운 톱니 모양이 된다. 이것을 비스듬히 기울여 층계와 꼭 맞게 끼우면 레고블락처럼 완벽한 조립으로 끝난다.

올려다보면 아찔한데도 얼기설기 엮인 천장 빔에 마치 안방 보료인 듯 편안히 걸터앉아 못을 박는 기술자들의 숙련된 동작은 빗나감이 없다. 두 다리와 두 팔, 손가락과 발가락, 인체란 얼마나 정교한지!두드리고 문지르고 누르고 뽑고 밀고 때로는 일하다가 먼지 들어간 두 눈을 비비고… 건축이란 조물주를 흉내 내는 창조 본능의 연장일 것이다. 건물의 외양과 내부구조가 잡히면서 유명 건축가 미스 반 데어로에가 건물이란 피부와 뼈로 이루어졌다고 한 말이 실감난다.

나는 현지인들을 치료하는 사이사이 거치적거리기나 하는 것은 아닐까 눈치를 보면서 공사현장에 올라가 보기도 하고 가벼운 일을 거들어보기도 하였다.


낮에는 구조물 사이사이로 햇빛이 들어와 일하는 사람들의 땀난 얼굴 위로 후안 미로의 구상화 같은 그림자를 만들었고 밤이면 휘영한 보름달빛이 아직 기둥으로만 이루어진 미래의 예배당 안에 출렁거렸다.

사람이 하나님의 집을 짓는 동안 하나님도 자꾸 궁금하셨는가? 이날 현장에서 올린 예배의 선교사님 설교말씀 본문은 이랬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시편 127:1>


김 범 수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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