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독한 편애

2013-05-2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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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일상, 깨달음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말들을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자녀 여섯이 뭐냐고 세련되지 못한? 조선시대 사람이라고 대놓고 혀를 차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아이들이 엄마 키를 넘어섰고 대학을 졸업한 자녀가 둘이나 되고 보니 어렵다는 이민 교회의 큰 일꾼들이요, 순간순간 중년의 고개를 넘는 부모에게 울타리가 되어주는 친구요, 위로자로 자랐다. 자녀가 여섯이 있어 얼마나 좋겠냐고 이제 5년만 있으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엄마가 될 거라고, 요즘엔 주위의 말들이 바뀌어간다.

사실 아이들이 여섯이다 보니 다른 집의 두 배, 세 배로 일도 많고 넘어야 할 고개도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 뒤돌아볼수록 쉼 없이 달려온 것 같은 그 세월들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다시 신혼으로 되돌린다 해도 난 여섯 명 이상의 자녀를 낳고 싶고 기회가 된다면 입양도 꼭 해보고 싶다.

육남매의 엄마로 살면서 난 너무 수지맞은 여인이기 때문이다.


그 놀라운 은혜를 나열하자면 이 짧은 칼럼으론 어림도 없지만 그 중에 내가 제일 고맙게 여기는 부분이 ‘사랑’에 관한 이해와 변화였다.

내가 좋은 것은 괜찮지만 내가 싫은 것은 불편하고 화가 났었던 이기적인 성품들이 자녀를 키우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에겐 아예 그런 선함이 없는데 나보다 아이들이 항상 먼저인 내 마음을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생명을 걸고 아기를 낳아서 그 고통과 불편함, 밤잠을 설쳐야 하는 피곤함까지도 아무런 불평 없이, 오히려 더 잘 해주지 못해서 안달이 난 그 마음은 내 마음이 아니었다.

한 살이 되어 아장아장 걷기까지 세상에 우리 아이만큼 예쁘고 똘똘한 아기는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매사에 흥분하고 행복했었다. 밥을 안 먹고 아기만 바라 봐도 세상이 다 내 것 같았으니까. 첫 발을 떼며 걸을 때에는 모든 동작을 멈추고 있는 힘을 다해서 응원박수를 보내며 며칠 동안 ‘우리 아이가 걷기 시작했다’고 온 동네에 소문을 냈었다.

누구나 하는 ‘엄마, 아빠’라고 말을 시작했을 땐 ‘우리 아이가 천재가 아닌가?’ 꿈꾸며 이미 마음은 아이가 명문대를 졸업한 것같이 무지갯빛 기쁨이 하루를 살맛나게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부끄럽고 철없어 보이는 팔불출이 분명했는데도 옆에 계신 부모님은 나보다 더 흥분하시고 몇 배 더 기뻐하셨다. 정말이지 대책 없는 부모의 사랑인데 흉해 보이기는커녕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뭉클하다. 요즘은 종종 눈물이 나는 것을 보니 나도 나이를 먹나 보다.

이 세상에 나 하나만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 주시고도 더 주지 못해서 안달이 난 사랑, 그것은 분명 지독한 편애다. 그런데 그 편애를 받아먹으며 핏덩이 같은 신생아가 제 몫을 하는 장성한 성인으로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의 편애는 위대하다. 자기 자식만큼만 세상을 사랑할 수 있다면 지구촌의 모든 분쟁은 아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는 사랑. 일년의 하루가 아닌 365일, 아니 평생을 다 갚는다 해도 그 깊은 사랑의 이자도 못 갚으리라. 또 한 번의 오월이 지나간다. 부모로, 자녀로 나의 자리를 점검해보니 부끄러움뿐이다. 몇년 전 이탈리아 로마를 지나면서 폼페이를 방문했었다. 1,600년이 훨씬 지난 후 발굴된 화석들 중에서 내 맘에 화석이 된 장면이 있었다. 그 이글거리는 용암 속에서 온몸이 녹아가면서도 오른팔에 아들을 꼭 끌어안고 온몸으로 아들을 감싸 안은 어머니와 아들의 화석! 그 어머니에겐 오직 그 아들뿐이었다. 가슴 먹먹한 그 화석 밑엔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고린도 전서 13:8)


정한나 <남가주광염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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