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상, 서럽고 아름다운 행사

2013-05-2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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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 속의 부처

경이로운 생명력으로 온 누리가 근질거리고 술렁이는 봄이었다. 그리고 열정으로 이어진 농익은 봄. 그 주체할 수 없는 충일한 관능의 물결 속에서, 인간의 언어는 너무나 가난하여 풍경은 그대로 아름다운 시가 되었다.

그러나 찰나의 백일몽이든가. 오는가 싶더니 가는 것이 계절이라지만, 이 봄도 그다지 가득한지가 겨우 어젠데, 벌써 봄이 지고 있다. 봄날이 가고 있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그 봄날이,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그 얄궂은(?) 봄날이 속절없이 가고 있다. 덧없다. 세상사 무상(無常)이다.

무상은 ‘변화’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모든 존재는 인연 따라 홀연히 나타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진다는 변혁의 메시지이며, 생성과 소멸의 지속적인 동적순환을 뜻한다. 그래서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를 제외하고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아무리 영원을 노래해도 그것이 자연이든, 인간과 인간의 정신작용이든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세계 속에서 불변의 존재와 현상은 없다. 따라서 세상은 변화의 역동적 과정이며 흐름으로써 ‘되어짐’의 여정이며 역사이다. 그 여정은 생명력으로 불타고 있어 창조와 진화의 동력이 된다. 무상하니 무엇이든 될 수가 있는 것이다.


한편 무상은 결코 허무나 비관적 세계관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무상의 진리를 통찰하고 행여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무엇이 있다는 착각을 경계하라는 의미이다. 지속되는 무엇이 있다고 고집하는 것은 무지가 빚어낸 허망한 욕구 때문이다.

무상한 것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고 오해하여 그것에 집착하기에, 거기에는 ‘불만족’이 그림자처럼 항상 뒤따른다. 불만족은 고통의 씨앗이다.

무상한 것을 무상한 것으로 바로 보고, 바로 이해하여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전도된 집착을 끊고 모든 정신적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만이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과 모든 것들의 소중함,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지금, 여기’를 절실하고 철저히 잘 살게 되며, 잘 늙고, 잘 병들고, 잘 죽어, 잘 돌아올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자연의 섭리인 ‘되어짐’의 여정에서 봄날 또한 도리 없이 가야만 한다. 그리고 그 마땅히 가야할 봄의 사연을 조선의 최고 지략가였던 정도전은 이렇게 절묘하게 표현한 바 있다.

‘봄이 봄의 출생이라면 여름은 봄의 성장(盛裝)이며 가을은 봄의 성숙이고 겨울은 봄의 갈무리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는 꽃과 가는 봄이 못내 아쉽고 까닭 없이 서러운 것을 어찌하랴. 그것은 아마도 사라져 버리는 것들은 어쨌거나 ‘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봄의 끝자락에서 오랜만에 맞이한 봄비다. 깊은 밤, 토굴의 지붕을 두드리는 끊어질듯 간간한 빗소리에 깨어나 보니, 그새 바람은 세차지고 빗소리는 보다 무거워졌다. 다시 든 얼핏 설핏한 겉잠 속에서 이리저리 생각을 뒤척인다.

‘봄잠 깊이 들어 새벽인줄 몰랐더니/ 곳곳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들리네/ 간밤에 비바람 소리 들렸는데/ 꽃잎은 또 얼마나 졌을꼬 ‘(당나라 맹호연의 ‘봄날 새벽’)그 안쓰러움 달래느니, 사라짐은 무엇이 되게 하는 고귀하고 엄숙한 여정이기에, 지는 꽃도 가는 봄도 무상한 모든 것들은, 그리하여 서럽고도 아름다운 행사이다.


박재욱 <나란타 불교아카데미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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