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 교황님의‘카리스마’

2013-04-0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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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재 동 <가톨릭 종신부제>

상식이 통하는 삶이란 별난 것이 아니다. 인간이 도리가 지켜지고 미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한 삶이다. 그 결과 누구나 열심히 정직하게 살면 잘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는 삶이다. 다시 말해서, 법과 원칙이 지켜지기에 요령을 피울 필요가 없는 삶이 바로 우리가 기대하는 상식이 통하는 삶인 것이다.

상식은 물 흐르듯 순리에 맞는 삶이다. 그래서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상식을 ‘인류의 수호신’이라고까지 칭했던 모양이다. 상식이 무너지면 그 결과 사회의 질서가 무너지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과 요행과 요령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상식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다. 상식이 풍부하다고 했을 때와 상식이 통한다고 했을 때의 그 의미가 같을 수만은 없겠다. 다시 말해, 상식이 풍부하다는 말은 아는 것이 많다는 뜻이어서 만물박사는 될 수 있어도 반드시 상식에 따라 사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많은 경우, 많이 배워서 상식을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마저 상식을 무시한 독선과 거짓의 삶을 사는 경우를 주위에서 너무나도 흔히 보아왔다.

이와는 달리 배운 것은 별로 없는 농부나 촌로들이 자연과 삶 속에서 습득한 지혜로 상식적인 삶을 사는 것을 보면 상식은 꼭 교육의 정도와 비례하는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물론 진정한 교육의 참된 이념은 그런 것이 아니겠지만 말이다.
최근 266대 새 교황으로 선출된 아르헨티나 출신 호르헤 베르골리오 ‘프란치스코 1세’ 교황은 벌써부터 인기가 대단하다. 교황 선출 직후 교황 전용차 대신 동료 추기경과 함께 버스를 타고 가면서 농담을 즐기고, 콘클라베 직전 묵었던 호텔에 들러 직접 숙박료를 계산했던 ‘상식적인’ 인품을 지니신 향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새로 태어날 아기의 이름으로 ‘프란시스’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상식적인 사고를 지니신 새 교황님의 비범한 카리스마를 짐작케 할 수 있겠다.


알고 보면 상식적인 삶이 바로 복음정신이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율법을 한 마디로 요약해서 ‘너희가 남이 너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는 것이 바로 율법의 정신이다’고 가르쳐 주셨기에 말이다. 분명 신앙은 난해한 철학이나 신학 이전에 사람이 사람으로서 해야 할 상식적인 삶의 자세요, 마음이요, 믿음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적인 형식과 제도만을 신앙의 도구로 여기며 사는 바리사이파와 같은 율법학자들을 질타하신 것 아닐까.

단언하건데 상식적인 신앙 삶은 자기가 처해진 삶에 충실한 삶이다. 농부는 농사짓는 일에, 선생은 가르치는 일에, 의사는 병 고치는 일에, 그리고 성직자는 신자들을 돌보는 일에 충실할 때 가장 상식의 삶에 가까운 살게 된다는 의미다.
만일 어느 가정주부가 기도회 모임이나 교회봉사에만 열심한 나머지 가정생활을 등한시한다면 이는 결코 상식적인 삶이라 할 수 없다. 비록 국가 지도자나 심지어 고위 성직자라 해도 혹시 권위의식으로 군림하는 삶을 산다면 이건 상식이 아니다.

내가 속한 삶의 텃밭, 내가 사는 시대의 고민, 내가 처한 역사의 과제, 내가 발을 딛고 사는 현실의 문제를 내가 십자가처럼 짊어져야 한다고 믿고 살아갈 때, 그 삶은 자연 상식에 가까운 삶이 될 수 있겠다. 그래야만 현재를 무시하거나 회피하려는 상식 밖의 신앙이 아닌 오늘의 연속으로서의 내일, 현재 삶 속에서 움트는 미래를 소망하는 상식의 신앙이 될 것이기에 말이다. 상식이 통하는 가정과 사회뿐만 아니라, 교회도 상식이 통하는 신앙인들이 모여 사는 그래서 온 주위가 상식이 강물처럼 흐르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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