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추수감사절과 미국 원주민

2012-12-0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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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윤실 호루라기

▶ 안맹호 목사 <미국 원주민 선교사>

11월의 명절인 추수감사절은 오랫동안 논쟁의 주제가 되어 왔다. 추수감사절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추수감사절이 누구나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보편적 명절은 아닌 것 같다.

추수감사절과 관련하여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일이 두 가지 있다.

첫째, 플리머스(매서추세츠주)에서는 매년 ‘추수감사절 반대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이 행사가 요구하는 것은 추수감사절의 명칭을 ‘전국민 통곡의 날’(The National Day of Mourning)로 바꿔달라는 것이다. 둘째,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은 11월의 명칭을 ‘미국 원주민의 달’(Native American Heritage Month)로 대통령령으로 공포했다는 사실이다. 한 해 동안 받은 은혜를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던 추수감사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은 불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두 가지 사실은 기독교 신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정착민들이 처음 추수감사절을 드린 것은 혹독한 추위와 풍토병을 이겨내고 새 땅에서 첫 결실을 거둔 다음 원주민들과 함께 감사의 축제를 벌였던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였다. 이 축제는 그 동안 도움을 준 왐파노아그 인디언에 대한 감사, 사랑, 우호증진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이웃 사랑과 평화는 간 곳 없고, 살육, 추방 등으로 고통 받게 된 원주민들은 이에 항의를 하는 것이다. 본래 추수감사절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항의를 표시하기 위해 이들은 반 추수감사절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뉴잉글랜드 원주민 연합(UAINE)은 추수감사절 정오에 명칭 개정을 요구하는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데, 추수감사절의 원래의 모습이었던 ‘이웃 사랑과 평화’의 회복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이웃을 외면한 감사는 의미가 없으며, 더구나 이웃의 불행을 전제로 한 행복은 보편적인 가치로 볼 수 없음은 물론 더욱이 기독교 신앙적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97년 클린턴 대통령이 선포했던 ‘11월은 원주민의 달’이 부시 정권 시절 중단되었다가 2009년 10월30일 오바마 대통령이 다시 ‘원주민의 달’(Native American Heritage Month)로 선포하였고 매년 11월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원주민의 달’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오늘날 미국은 원주민(First American)들의 헌신과 고통의 역사와 문화에 빚을 지고 있는데 반해 지금까지 원주민들은 오랫동안 무시되고 적절한 처우를 받지 못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연방 정부는 재정 지원을 확대할 것이며, 앞으로 ‘대등한 관계(nation-to-nation relationship)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교회가 하지 못하는 ‘치유와 화해’를 위한 일을 오히려 정부가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자기희생적’인 노력은 정부보다 교회가 앞장서서 해야 할 복음의 보편적 가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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