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프니까‘인생’이다”

2012-12-0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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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인의 신앙

▶ 김재동 <가톨릭 종신부제>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아픔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감히 남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자기만의 고뇌를 안고 묵묵히 한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길이어서 일까? 이런저런 상처들로 저마다의 가슴 안에 아픔들이 들어 있다.

그래서인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아픈 것이 어디 젊은 청춘만의 것일까. 그런 면에서 ‘아프니까 인생이다’란 말이 더욱 우리에게 절실하게 들려올 것만 같다.

그런데도 웬일인지 인간만은 자기가 안고 있는 아픔을 숨기며 살려고 한다. 그래서일까? 만나는 사람마다“ How are you?”라고 말을 걸면“ I am fine”이라고 대답한다.


걱정 없는 사람이야 당연히‘ fine’이라고 하겠지만, 비즈니스가 안 돼 속이 타들어가는 사람까지도 ‘fine’이라고 하는 세상이니 온통 거짓투성이의 세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가슴 아파 죽겠어도 어디 가서 위로받을 곳조차 없다. 자신을 제외하고는 모든 세상 사람들이 아픔이나 걱정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군중과 함께 어울려 살면서도 사람들 가운데서 오히려 고독을 느낄 수도 있는 이유이기도 한다.

예로부터 ‘사랑은 나눌수록 커지고, 아픔은 나눌수록 가벼워진다’는 말이 있다. 마음속 상처와 고민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래서 속이 홀가분해 질 수 있다. 속을 털어 놓으니 터질 듯한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까닭이다.

그래서 걱정과 분노 등이 쌓이면 비싼 돈을 지불하고 자기 속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담가나 정신과 의사를 찾는 이유도 여기는 있는 것 아닐까.

약간은 우스갯거리 농담이지만, 미국 와서 얼마 안됐을 때의 이야기다.

영어 때문에 힘들어하는 동료들 가운데 정신과 하는 친구만은 별로 어려움 없어 보였다. 그의 말인 즉 어차피 못 알아듣기에 들어주는 척 졸고만 있어도 환자의 가슴속 아픔이 가벼워지니 얼마나 좋은 직업이냐고 자화자찬한다.

환자는 환자대로 치료돼 좋고, 자기는 졸면서도 돈 받으니 좋다는 정신과 의사 친구의 농담에서 혼자 앓고 있는 가슴 아픈 사람들의 상처가 무엇인지 약간은 알 것 같기도 하다.


헌데 이같은 아픈 상처마저도 때론 진주 같은 보물이 될 수 있다. 진주는 상처를 껴안고 몸의 진액을 뽑아내는 조개의 아픈 삶 속에서 잉태된 열매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된다는 것은 상처를 진주로 바꾸는 일이다’라고 누군가 말했다.

상처를 진주로 승화시켜 내지 못하면 스스로 죽을 수밖에 없다. 좌절과 분노, 아픔과 피해의식으로 살이 문드러지고 속이 시커멓게 탈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처를 어루만져 잘 다루어내면, 인생이 진주처럼 깊은 지혜와 혜안으로 쓰임을 받게 된다.

상처를 겪어 본 사람만이 그래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그 상처를 껴안을 수 있다.

그 때문에 하느님이 귀히 쓰시는 인물들을 잘 관찰해 보면 과거에 남다른 많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그 좋은 예가 구약에 나오는 ‘요셉’이다. 그는 아버지 야곱의 남다른 사랑을 받고 자란 귀한 자식이었지만,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로 낯선 이집트에 종으로 팔려갔다. 만일 요셉이 그 아픔과 상처를 진주로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그는 분명 분노와 미움으로 미쳐버렸을 것 아닌가.

그러나 요셉은 하느님을 믿고 그 분 안에서 신실하고 지혜로운 강한 믿음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자기를 배반한 형제들을 진정으로 용서하고 그 아픔을 승화시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 아름다운‘ 진주’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상처마저도 인간의 삶을 승화시키는 또 하나의‘ 은총의 도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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