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프리카의 추억

2012-11-27 (화)
크게 작게

▶ 선교하는 삶

▶ 김 범 수 <치과의사>

위대한 의사 슈바이처는 또한 음악가였다. 바흐를 어찌나 사랑했던지 스무 살 무렵부터 유럽무대에서 그의 곡들을 외워서 연주했고 서른 살이 되어서는 ‘평생 바흐 오르간 최고 연주자가 되라’는 스승의 권유로 바흐의 인생과 예술을 연구한 저서를 내기도 했다. 그 책의 제목인 ‘음악가이자 시인, 바흐’는 한편 ‘음악가이자 의사, 슈바이처’를 떠올리게 한다.

풍부한 예술적 재능을 지닌 슈바이처가 의학박사가 된 것은 다시 십년이 흐른 마흔 살. 그의 첫 선교지이자 생을 마감한 곳은 아프리카 적도 부근 가봉의 랑바레네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곳에 자비로 병원을 개설하고 원주민들을 보살폈다.

나는 최근 이 지역의 이름을 딴 ‘랑바레네-바흐에서 아프리카까지’라는 오래된 음반을 어렵게 구했다. 프랑스 작곡가와 가봉의 뮤지션들이 공동 작업한 이 음악은 바흐의 잘 알려진 성악-기악곡들이 가봉의 전통 음악 리듬과 어우러져 있다. 서양 연주자들과 가봉 그룹들이 절묘하게 만들어낸 조화로움은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나는 지금 아프리카에 와있다. 케냐와 에티오피아가 만나는 국경지역 빈민가이다. 물도 없고 땅도 황폐하게 마른 이 땅에, 에티오피아 전쟁 난민들이 그나마 먹을 것을 찾아 넘어오면서 생겨난 슬럼이다.

국경지역에 주둔한 케냐 군부대의 부대장이 마침 크리스천이어서 주일이면 예배가 열린다. 예배의 시작은 흥겨운 찬양이다. 이들은 타고난 음악가들인가? 이렇다 할 악기가 없어도 무엇이든 두드리면 그것이 멋진 드럼이 되고 낡은 기타의 멜로디는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내륙 도시 근처 빈민가의 천막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예배시간은 따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해 뜰 때 일어나 멀고먼 흙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모이면 그것이 예배의 시작이다. 여기에도 악기는 제대로 된 것이 없다. 봉고 같이 생긴 길고 둥그런 원통을 두 손바닥으로 때릴 때 흉내 낼 수 없이 리드미컬한 음악이 된다. 여기에 맞춰 마사이 부족들의 특징인 긴 다리와 긴 팔을 앞뒤로 흔들며 춤을 추면 안무가 없이도 그것이 곧 하늘에 올리는 아름답고 원초적인 율동찬양이다.

‘랑바레네’는 슈바이처에게 헌정되는 기념 음반인데 이것을 듣노라면 그동안 단기방문 치과 봉사 길에서 만났던 아프리카 땅을 나도 감히 슈바이처의 눈으로 추억하게 된다. 슈바이처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 후로도 너무나 많은 선교사들이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고 사랑을 전해주었던 사람들, 지금도 끊임없이 세계 각국의 젊은 선교사들이 자신의 삶을 바치기 위해 찾는…… 그 사람, 그 땅, 아프리카를 이미 이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지금도 그리워한다.

기자 출신의 미국인 소설가 해리 스트릿(그레고리 펙 분) 역시 헤밍웨이 원작 ‘킬리만자로의 눈’ 속에서 이 땅을 사랑했다. 동아프리카 여행 중 얻은 패혈증으로 킬리만자로 산자락에서 죽게 된 주인공. 죽음을 눈앞에 두고 비로소 삶을 돌아보게 하는 스토리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프리카 땅을 밟아볼 것을 권한다. 젊은이들에게는 살아 있는 희망을 온몸으로 느껴보라고, 연세 드신 분들에게는 다스리기 어려웠던 지난날의 욕망을 묻어볼 그런 땅이 여기 있다고. 아프리카!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