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씨 뿌리는 사람들

2012-07-3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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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인의 신앙

▶ 김 재 동 <가톨릭 종신부제>

땀 흘리지 않고 씨를 뿌리는 농부는 없다. 우리의 삶만 해도 혼자만의 삶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함께하고 있음 때문이다. 빵 하나만 해도 그렇다. 아침밥상에 빵 한 조각이 올라오기까지는 셀 수 없는 사람들의 수고가 있었다. 땅을 갈고 밀과 보리의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가꾸는 농부가 있다. 추수하는 일꾼, 밀을 밀가루로 만드는 공장의 노동자와 빻아진 밀가루를 봉지에 담는 사람, 그리고 운반하는 트럭 운전수와 가게에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점원 등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땀방울을 흘렸다.

요사이는 농사 짓는 것도 기계화된 탓인지, 농사철이 되어도 들판에 사람들이 눈에 별로 띄지 않는다. 5번 프리웨이를 타고 북상하다 보면, 끝없이 펼쳐진 중가주의 광활한 들녘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전 미국의 농산물 공급원이다. 가없이 펼쳐진 초원이 그것을 말해 준다. 이 정도의 넓은 땅에 온갖 농작물을 심어 온통 초록들판을 만들려면 분명 누군가 열심히 씨를 뿌렸으리라.

그런데도 이상하게 들판에는 사람들이 안 보인다. 농부들의 두 손 대신 기계가 농사를 짓는 때문인가 보다. 이민 붐이 불기 시작한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고국에는 논을 갈고 밭의 풀을 뽑느라고 대지 위에는 항상 농부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씨를 뿌리기에 바빴다. 당시에는 농사 짓는 것이 삶의 근본이어서 농촌에 사는 시골사람들은 물론이고 도회지 사람조차도 ‘씨 뿌리는 삶’은 의속 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알고 보면 씨 뿌리는 삶이 어디 농사 짓는 농부만의 일일까. 부부가 하나 되는 결혼과정이 그렇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오죽했으면 ‘자식농사’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자녀를 길러내는 일이 진정 마음으로 노심초사 순간순간 안으로 진땀을 흘리는 일 아닌가.

우리의 ‘신앙생활’도 알고 보면 농사 짓는 일과 같다. 전정 누군가 하느님 ‘말씀’을 씨 뿌리지 않으면 수확을 거둘 수가 없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께서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있어야 들을 수 있고, 들을 수 있어야 믿음이 생긴다”고 하신 것 아닐까.

돌이켜 보면, 우리의 믿음도 알게 모르게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 ‘말씀’을 씨 뿌리느라 수고한 분들의 피땀어린 결심임이 분명하다. 땀 흘리지 않고 씨를 뿌리는 농부는 없다. 씨 뿌리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씨 뿌리는 일도 하기 나름이지만 말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무리 귀찮다고 그냥 굳은 땅 위에 씨를 뿌리지만은 않는다. 먼저 돌더미를 파서 골라내고 굳어진 땅부터 파헤쳐 일군다. 그런 뒤 씨를 뿌리고 부드러운 흙으로 덮고 물을 준다. 그러다보면 손톱이 갈라지거나 피부가 터지기도 한다. 이마와 등줄기로는 땀이 비 오듯 흐르고, 허리는 곧바로 펼 수 없을 만큼 굳어지게마련이다.

하느님 말씀을 세상에 씨 뿌리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오죽하면 시집 가고 장가 갈 생각을 접어둔 채 복음을 전하는 온 심혈을 기울이는 분들이 생겨날까. 추수할 보람 하나로 농부가 되듯이 말이다. 척박한 인간의 마음밭을 일구느라 온몸으로 수고하는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있기에 우리의 신앙이 자라나는 것 아닌가! 그래서일까 우리는 씨 뿌리는 분들의 수고로 얼룩진 피땀이 우리들 삶 안에서 ‘꽃’으로 피어나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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