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북한을 다녀온 책임

2012-07-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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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 순 태 <카라미션 운영위원장>

▶ 신, 일상, 깨달음

북한을 다녀오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금강산 관광을 위해, 의료봉사를 위해, 그리고 민간단체의 고아 지원을 위해 다녀오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북한을 방문하는 지역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평양이거나 금강산 지역, 경제특구였던 나진, 선봉지역이 외국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곳입니다. 지난 10여년 동안 고아들을 돕기 위해 지원 단체들에게 청진지역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중국에서 자동차로 두만강을 건너 회령 세관을 통과하고 자동차로 청진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2년 전부터 여기는 다시 닫혔습니다. 지금은 종전보다 더 철저한 통제, 삼엄한 철조망이 설치됐습니다.

일단 북한에 입국하면 제한된 지역에서도 단체든 개인이든 반드시 안내원 혹은 지도원의 인솔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자유롭게 평양이나 나진, 선봉지역을 혼자서 나다닐 수 없습니다. 그 안내원에게 지시된 스케줄대로 안내하는 곳에만 가고, 허락된 사람만 만나고, 보여주는 명소만을 보고, 안내하는 행사에만 참석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북한을 여러 번 방문하는 경우라도 예외는 없습니다.


북한에 다녀왔다는 것은 한정된 곳에서 철저히 지도원의 안내를 받았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것은 북한 당국이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곳이 있다는 말이고, 또 아무리 북한을 다녀왔다고 하더라도 북한 당국이 보여주는 것만 보고 왔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북한 특정지역의 외견만 보고 왔다는 것이고, 진정한 의미에서 북한을 보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런 제도는 종전의 소비에트 연방과 개방되기 전의 중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산주의 장막은 좋게 말해서 자본주의의 침투를 막기 위하여, 전체인민의 결속을 위하여 외부와의 접촉을 제한합니다. 공산체제 아래서 낙후된 주민들의 삶을 공개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북한의 그 철저한 통제, 안쓰럽기까지 한 지도원 안내 제도는 이해가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북한을 다녀오신 분들 중에서 그런 제한적인 관람(?)을 마치 북한 전체를 보기나 한 것처럼 생각하거나 발언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본 평양의 외관이 정말 북한 전체의 모습일까요? 또 평양 서민들의 삶과 의식은 진정 어떤 것일까요? 평양 이외 지역의 형편은 어떨까요? 왜 북한은 국토의 전 지역을 포장 속에 숨겨두려 할까요? 어째서 200만이 굶어죽는 참사가 있었고, 지금도 양식 걱정을 해야 하고, 왜 현재까지 곳곳에서 아사자가 나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올까요? 중국과의 국경에 삼엄하게 설치되는 철조망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런데도 북한을 다녀온 친북인사들이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더라”라고 한다든지, 주체파 학생들이 “김정일 장군 만세”를 부른다든지 하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 근거한 행동일까요?

한국의 정치인들은 북한에 가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남한의 진보세력들이 북한 주민들의 고통에 함구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어째서 북한을 벗어나 죽음을 무릅쓴 과정을 거쳐 남한에 온 동족들을 배역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들이 북한에 가서 본 것이 얼마나 제한적인 것인지를 왜 고려하지 않는 것일까요? 어느 사회, 어느 국가도 부정적인 면은 있다는 논리로 북한 동족의 고통에 고개를 돌린다면 너무나 잔인한 외면이 아닐까요? 북한을 다녀온 분들은 동족에 대한 그만한 책임을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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