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 초, 정확히 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선언으로 말미암아 교회는 공식적으로 승인되었습니다. 200여년 동안 내려오던 핍박의 불안감은 없어졌습니다. 단지 핍박받지 않아도 된 것이 아니라 로마의 지배층을 포함해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와 국가의 결합은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승리로 비쳐졌습니다. 그러나 실체는 무엇일까요? 수많은 긍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공인 사건은 교회 타락의 전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 교회는 결코 그 이전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큰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먼저 교회가 세상의 주류가 된 것입니다. 갑자기 부여된 ‘주류’의 지위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회엔 낯선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제자도가 요구하는 바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던 수백만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밀려들면서 핍박 가운데 정제되고 추구되었던 참 제자도는 자연 희석되고 말았습니다.
교회사의 시대구분을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교회시대를 셋으로 나눈다면 313년의 기독교 공인, 그리고 1517년의 종교개혁이 분기점이 될 것입니다(물론 세계 기독교회의 한 축인 정교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할 구분입니다).
하지만 만일 둘로 나누라면 저는 기독교가 공인된 313년을 그 분기점으로 삼겠습니다. 313년 이전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핍박의 시대입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약간 손해 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일이었고, 죽기를 각오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교회는 순결했고, 주님의 가르침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313년 이후 교회는 권력을 얻었습니다. 명예를 얻었습니다. 부자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체제 속에서 교회는 정치와 결탁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가난한 자와 약한 자들을 돌보는 섬김이 거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섬기는 공동체로서의 비전은 수도원을 통해서만 이따금 기억될 뿐이었습니다.
한 번 배부르기 시작한 교회, 한 번 권력의 맛을 보게 된 교회는 계속해서 기득권을 강화시킬 궁리만 합니다. 이것은 구약의 제사장들의 타락과 성전제도의 타락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오늘의 교회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물량주의와 물권주의(맘모니즘)의 첨병 같습니다.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은 교회에서도 진리입니다.
“베드로에게 빼앗아 바울에게 주는 정부는 언제나 바울의 지지를 힘입어 유지된다.” 목회자가 숫자에 맹목적으로 메달리는 것은 숫자를 영권(?)으로 생각하는 교인들과 연관이 있습니다. 목회자가 깨어나야 겠지만 이에 못지않게 교인들도 깨어야 합니다.
일전에 한 한국 대형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목사님의 한 마디마다 예배당 안의 회중들은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목사님 말씀했습니다. “한강물은 흐릅니다.” 성도들은 변함없이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그 순간, 313년이 어쩌고, 제자도가 어쩌고를 논하는 제 모습이 갑자기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