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 하나님의 궁극적 관심

2012-03-07 (수)
크게 작게

▶ 기윤실 호루라기

만일 하나님의 궁극적 관심이 교회였다면, 1785년 전도 유망한 영국 하원의원인 윌리엄 윌버포스가 회심했을 때 존 뉴튼을 통해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을 세우신 목적은 교회 뿐 아니라 국가의 유익을 위해서다.”

이 조언은 캠브리지 대학에 다니면서 21세에 최연소로 하원의원에 당선된 윌버포스가 복음주의 기독교인으로 거듭난 후 심각한 고민에 빠졌을 때 들은 것이다. 정계에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정계를 떠나 전임 사역자가 될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다.

만일 윌버포스가 한국교회 목회자에게 찾아와 조언을 구했다면 십중팔구 정치를 그만두고 신학을 하라고 충고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제안을 생산하는 한국교회의 편협한 세계관이 한국 기독교로 하여금 ‘개독교’라는 비판을 받게 한다.


역사학자들은 윌버포스에게 던진 존 뉴톤의 짧은 조언이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고 평가한다. 이유는 윌버포스가 노예선장 출신인 뉴튼 목사의 충고대로 정계에 남아 20여년간 입법투쟁을 한 끝에 1807년에 노예무역금지법을 통과시켰으며, 그로부터 26년 후인 1833년 노예해방 법이 통과된 결과 영국에서 노예제도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는 62만명이 희생된 남북전쟁의 결과로 얻은 미국의 노예제도 폐지보다 30여년 앞선 것이다. 만일 윌버포스가 목사가 되어 노예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들에게 전도하고 그들을 위한 교회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프리카에서 팔려온 200만 노예는 더 불어나고, 열악한 환경과 비인간적 처우로 25%가 사망하는 죽음의 항해는 계속되고, 국가 수입원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노예무역 경제를 기반으로 한 기득권층의 타락은 더 심해졌을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영국에 만연한 구조적 악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병들어 상품가치가 없자 산 채로 바다로 던져지는 병든 노예들의 비명을 들으셨고, 노예선에서 공개적으로 성폭행 당하는 여자 노예들의 눈물을 보셨으며, 경매를 통해 뿔뿔이 흩어지는 노예 가족들의 아픔을 느끼셨다. 하나님은 윌버포스를 통해 하나님의 긍휼과 공의의 통치가 영국사회에 임하게 하셨다.

윌버포스가 동시대인이었던 요한 웨슬레가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웨슬레는 지상명령, 윌버포스는 문화명령의 부름을 받아 순종했다.

지상명령이 세상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불러들이는 사역이라면 문화명령은 교회에서 훈련된 사람들을 세상으로 보내는 사역이다. 지상명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문화명령은 그분의 주권에 초점을 둔다. 지상명령이 그리스도의 통치가 개인 안에, 문화명령은 사회와 문화에 임하게 한다.

한국교회가 성장을 멈추고 더 이상 칭찬 받지 못하는 이유는 지상명령만 순종했기 때문이다. 사역의 궁극적 목적이 교회일 때 교회는 부패하고 세상에서 존재가치를 상실한다. 사역의 궁극적 목적이 교회를 통한 세상일 때 교회는 건강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 이제는 문화명령에 순종할 때다. 교회가 복음전도와 문화변혁의 양날개를 달고 비상할 때다.

다니엘 정 목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