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분노의 세계화’와 한국정치

2011-10-31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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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혼란스럽다. 멀리 태평양 건너에서 바라본 탓인가. 그 밑바 닥의 흐름이 잘 파악이 안 된다. 일견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쏠 림현상이다. 5년이 채 안 되는 기 간을 단위로, 그것도 급커브의 좌 회전과 우회전을 번갈아 하면서 진로를 바꾸고 있어서다.

입만 벌리면 좌파의 논리를 펴 나간다. 그러던 사람이 5년도 못 가 우파로 돌아선다. 그리고 또 몇 년 안 가 ‘진보’의 대변자를 자처한다.

이런 사람을 과연 제대로 이념 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까. 그런 일이 그런데 2002년 이 후 한국에서는 집단적으로 벌어 지고 있다. 그래서 쏠림현상이고,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지난 주 서울시장 선거도 그렇 다. 지난번 대선 때 보수를 지지했 던 30대가, 20대가 그리고 40대가 대거 이탈하면서 이변을 불러왔 다. 불과 5%의 지지 밖에 못 받았 던 무소속의 박원순 후보가 거대 여당의 후보를 여유 있게 누르고 시장선거에서 승리한 것이다.

‘정당정치에 쓰나미가 덮쳤다’ ‘정치권에 발을 디딘지 50일밖에 안된 시민운동가가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정당을 초토화시켰다’ - 이후 쏟아진 논평들이다. 동시에 새삼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트위터의 위력이다. 그리고‘ 안철수 신 드롬’이다.

안철수의 막바지 응원이 괴력 을 발휘했다. 그리고 트위터를 통 한 투표 독려로 마감직전 넥타이 부대가 몰려들면서 명암을 갈랐 기 때문이다. 이 현상을 그러면 어 떻게 보아야 하나.

“세계화와 IT혁명은 ‘분노의 세계화’를 가능케 했다.” 뉴욕타임 스의 토머스 프리드먼의 말이다.

런던이 불탔다. 아랍의 봄을 맞 아 중동의 독재자들은 잇달아 권좌에서 밀려나고 있다. 아테네에 서 바르셀로나에 이르기까지 유럽 각국의 광장은 성난 젊은이들의 시위물결로 넘실거린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티파 티운동이 맹렬히 전개된다. 급기 야는 월스트릿을 점령하자는 구 호와 함께 시위는 계속 번져나 가고 있다. 분노의 물결은 만리 장성도 무너뜨릴 기세다. 이른바 ‘북경 컨센서스’도 흔들리고 있 는 것이다.

이처럼 전 세계가 요동치고 있 는 가운데 한 말로, 프리드먼은 세 계화와 신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낙오자가 된 중산층과 중하류계 층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거대한 분노로 표출되고 있는 것으로 파 악했다.


“미국 발 금융위기는 정치위 기를 가져왔고 정치위기는 기존 정치엘리트에 대한 저항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군사정치 전문 싱크탱크인 스트랫포가 내 놓은 분석이다. 미국, 유럽 그리 고 중국이 맞은 문제를 국제정 치경제의 한 거대한 흐름에서 분석했다.

2008년 월스트릿이 무너졌다. 그 와중에서 드러난 것은 금융 엘 리트들의 탐욕과 도덕적 기강해이 의 실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엘리트들이 내놓은 처방전 은 금융엘리트 보호와 정부 권력 확대뿐이었다. 금융위기의 고통은 중산층에게만 전가된 것이다. 그들의 분노가 결국 폭발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는 동시다발적인 정치경제적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지적이다.

‘안철수 신드롬’과 ‘박원순 부 상’은 이런 면에서 일과성의 해프 닝으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요 동치는 현 국제정치의 거대한 흐 름과 맥이 닿아 있다는 해석이 가 능할 것 같다.

‘미래가 불안하다’ - 한국의 20 대가, 30대가, 또 40대가 한 목소 리로 외치고 있는 소리다. 기존의 정치 엘리트들에게는 기대할 것 이 없다. 아니, 환멸 그 자체다. 그 가운데 들려온 소리가 희망의 메 시지다. 희망의 전도사 안철수가 그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분노의 세계화’의 한국버전이 라고 할까.‘ 안철수 신드롬’은 이 런 측면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총론 이다. 문제는 각론이다. 불신, 불 만, 불안 - 그리고 분노는 세계적 인 현상이다. 그 분노를 어떻게 승화시킬 것인가. 이는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다. 나름의 대안을, 새로운 창조적인 정치 담론을 제 시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들려오는 소 리는 ‘편 가르기’의 구호뿐이다. ‘1%대 99%’ 대결논리가 바로 그 렇다‘. 99%의 민심이 분노했다’ - 진보를 지향한다는 한 국내 언론의 주장이다. 이명박 정부를 1% 의 기득권만 감싸는 정권으로 몰아붙였다. 그러면서 박원순 후 보의 승리를 99%의 승리로 단 정 지은 것이다.

그 주장에는 한 가지 함의가 스며들어 있다. 일종의 계급갈등 론이다.‘ 1%의 부자와 99%의 빈 자’의 대결구도로 현 한국의 정치 상황을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남 남갈등을 극대화 하자는 저의가 엿보이는 것이다.

진정성이 결여된 보수 여당은 그런데도 식상한 ‘박근혜 대세론’ 에 여전히 함몰돼 있다. 반면 진보 세력은 ‘종북’ (從北)이라는 늪에 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그 상황에서 분노한 민심은 어떤 방향으로 분출될까. 2012년이 걱정스럽다. 분노는 곧잘 사단의 통로 역할을 하기 때 문이다. 쏠림현상이 극심한 한국 정치에서는 특히.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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