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폭풍우 속에서 춤추는 법

2011-10-1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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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의 행복

오래 전에 작자 미상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짧은 예화를 통해 삶의 자세를 언급한 다음과 같은 글이었습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한 여성이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니 머리카락이 달랑 세 가닥 남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리저리 쳐다보던 그 여성 왈 “흠, 오늘은 세 가닥 머리를 땋으면 되겠군” 하고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루를 유쾌하게 보냈습니다. 다음 날 다시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달랑 두 가닥의 머리카락만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거울 속 자화상을 바라보던 그녀 왈 “오늘은 그러면 양갈래 머리를 해 볼까?” 하고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만족하게 그날을 보냈습니다.


그 다음 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달랑 한 가닥의 머리카락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녀가 주저없이 선택한 것은 한 가닥 남은 머리에 끈을 묶어 내리는 말총머리였습니다. 그리고는 행복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이제는 한 가닥의 머리카락도 남지 않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신나게 외쳤습니다. “와! 이제는 무슨 헤어스타일을 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작가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자세야말로 모든 문제의 해결점이 아니겠는가. 난관에 직면할수록 단순하게 살고 관대하게 사랑하고 깊이 보살피고 지속적으로 기도하라. 인생이란 폭풍우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쏟아지는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추석 즈음 참 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부모님과 관련된 일인데, 아들 딸들이 모두 미국, 캐나다로 이주한 후, 치매와 하반신 불수로 고생하시던 부모님은 정상적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지난 2006년, 33년간 사시던 집을 정리하여 요양원에 몸을 의탁하셨습니다. 도움이 필요하셨던 두 분은 간병인을 고용하시고는 그를 철석같이 믿고 모든 은행 거래를 맡기셨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간병인이 아버님의 예금 수억원을 몰래 전액 사취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올해 초 한국 방문 때 이 사실을 안 저는 아버님과 상의해 검찰에 고소를 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그 간병인이 그 많은 돈을 아버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우기는 것이었습니다.

아버님은 대질심문에서 그런 적이 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80세가 넘으신 아버님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검찰은 “주지 않았다는 증거를 확보할 수 없다”라는 황당한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하게 되었고, 그 통지를 추석 전날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동안의 일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저희 변호사조차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담당검사의 처분은 아버님과 저를 억울함과 울분, 분노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갔습니다. 부모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했다는 자책감, 금전을 갈취하고 거짓말을 해대는 간병인의 뻔뻔함에 대한 분노, 아버님의 진술을 무시하고 아무 관계도 없는 간병인에게 전 재산을 줄 수도 있다고 판단한 무능한 검사에 대한 울분, 심지어는 목회에 38년을 바치고 그 누구보다 신실하게 살아오신 아버님의 노년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하나님을 향한 부끄러운 원망….

그 상황에서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읽은 성경의 욥기는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기독교의 근본 진리를 다시금 깨우쳐 주었으며, 마음의 평정을 찾게 해 주었습니다.

오늘 나는 예화 속의 여성처럼, “나는 그래도 저녁마다 전화로 대화할 수 있는 부모님이 살아계시니 행복하지 아니한가?, 부모님의 재산은 모두 사라졌지만, 그로 인해 내가 더 효도할 기회를 얻었으니 그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라고 생각하며 행복의 조건들을 헤아려 봅니다. 그것이 바로 ‘폭풍우 속에서 춤추는 방법’일테니까요.


박 준 서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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