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인의 신앙 상식이 통하는 삶

2011-07-17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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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께서는 살아생전 강론이나 말씀에서 유독 ‘상식’을 강조하신 분이다.
참된 신앙인은 가장 ‘상식’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분의 믿음이요, 가르침이었다. 신앙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길로 여기셨기에, 그분의 삶이 평범한 상식 안에서 비범한 카리스마를 지니셨던 모양이다.
상식이 통하는 삶이란 별난 것이 아니다. 인간 도리가 지켜지고 미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한 삶이다. 그 결과 누구나 열심히 정직하게 살면 잘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살아 있는 삶 아니겠는가! 법과 원칙이 지켜지기에 요령을 피울 필요가 없는 삶이 바로 우리가 기대하는 상식이 통하는 삶이라는 소리다.
가난한 서민들의 꿈은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일해 모은 돈으로 ‘보금자리’ 장만하는 것 아닐까. 헌데 먹고 싶은 것 참아가며 아무리 발버둥 치며 저축해도 돈 있는 투기꾼들 때문에 자고나면 집값이 뛰어올라 실제적으로 저축하는 것이 오히려 손해가 되는 그런 부조리하고 예측불허한 세상이라면 도저히 꿈과 희망이 살아남을 수 없다. 희망이 안 보이면 요행을 바라거나 자포자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분명 ‘상식’은 사람이 사랍 답게 사는 길이다. 그래서 교육도 필요하고 신앙도 필요하다. 그런데 많은 경우 교육을 많이 받아 상식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상식을 어기고 무시하며 독선과 거짓으로 남을 우롱하는 경우가 눈에 띈다. 그렇고 보면 상식이 꼭 교육의 양과 비례하는 것만도 아닌 모양이다. 최근 벌어진 미주총련 회장 선거전의 추태만 봐도 그랬기에 말이다.
정치든, 법이든 모든 리더십은 그 때문에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존재 이유가 있다. 그래서 개인 삶과 사회에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알고 보면 신앙도 마찬가지다. 상식적인 삶이 바로 ‘복음’ 정신이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율법을 한 마디로 요약해서 “너희가 남이 너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남에게 주는 것이 바로 율법의 정신”이라고 가르쳐 주셨기에 말이다.
분명 신앙은 난해한 철학이나 신학 이전에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상식적’인 삶의 자세요, 마음이다. 농부는 농사 짓는 일에, 선생은 가르치는 일에, 의사는 병 고치는 일에, 그리고 성직자는 신자들을 돌보는 일에 충실할 때 가장 ‘상식’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된다는 의미다. 만일 어느 가정주부가 기도회 모임이나 교회봉사에 열심인 나머지 가정생활을 등한시 한다면 이는 결코 상식적인 신앙생활이라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내가 속한 삶의 텃밭, 내가 사는 시대의 고민, 내가 처한 역사의 과제, 내가 발을 딛고 사는 현실의 문제를 내가 ‘십자가’처럼 짊어져야 한다고 믿고 살아갈 때 그 삶은 자연 ‘상식’에 가까운 신앙이 될 수 있다. 그래야만 ‘현재’를 무시하거나 회피하려는 상식 밖의 신앙이 아닌, 오늘의 연속으로서의 내일, 현재 삶 속에서 움트는 미래를 소망하는 ‘상식’의 신앙이 될 것이기에 그렇다. 가정과 사회는 물론 교회도 ‘상식’이 통하는 신앙인들이 모여 사는, 그래서 온 주위가 상식이 강물처럼 흐르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김 재 동<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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