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8년 평창’에의 기대

2011-07-11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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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은 재앙인가 축복인가’- 3년 전 베이징올림픽이 열렸을 때 일부에서 던져진 질문이다.

막대한 재정을 들여 올림픽 경기를 치렀다. 그러나 뒤따라 온 것은 경제난이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의 경우다. 반정부 시위가 계속된다. 결국 유혈사태가 벌어졌고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올림픽은 개막됐다. 그리고 10여년 후 멕시코는 경제적 파탄을 맞는다.

경제적 재앙 정도가 아니다. 올림픽은 때로 한 체제의 붕괴를 불러 오기도 한다. 니치 독일의 경우가 그렇다. 체제 선전장으로 나치 독일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적극 활용했다. 그리고 만 10년 후 나치체제는 패망했다.


모스크바 올림픽이 열린 해는 1980년이다. 그 후 꼭 10년 만에 소련은 붕괴된다. 여기서 하나의 공식이 성립된다. 지나치게 단순화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전체주의 독재체제에서 올림픽이 치러지면 그 체제는 얼마 안 가 무너진다는 일종의 ‘징크스성’ 공식이다.

왜. ‘나비효과’가 그 한 설명이다. 나비가 날개 짓을 한다. 그 미묘한 공기의 움직임은 거의 느끼지 못한다. 25일 동안 변화가 없어 보인다. 그 변화가 갑자기 감지되는 것은 26일 째부터다. 그리고 30일이 됐을 때 나비의 날개 짓은 거대한 토네이도를 몰고 오는 것이다.

한숨이, 눈물이 쌓인다. 분노가 소리 없이 번진다. 그러나 아무 변화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상황은 돌연히 임계점에 이르렀다. 마침 개최된 올림픽이 그 촉진제가 된 것이다. 체제에 억눌려온 사람들이 인류의 제전을 통해 진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전체주의 독재체제는 진실이 알려질 때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 체제에 한번 균열이 일면 상당히 급속도로 붕괴된다.” 일찍이 피터 드러커가 한 말이다.

베이징올림픽 이후의 중국은 그러면. 체제유지에 상당한 피로감을 보이고 있다. 연 18만 건이 넘는 각종 시위가 바로 그 증좌다. 그런 중국공산당의 오늘을 응시하면서 적지 않은 관측통들은 2018년이란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이 치러진지 10년이 되는 그 해를.

올림픽은 재앙이 아니다. 축복이다. 특히 민주주의 배당금으로 주어졌을 때에는. 그 대표적 케이스가 서울올림픽이다.

88서울올림픽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각종 경제지표는 수직에 가까운 상승세를 보였다. 한국의 안보환경에도 엄청난 변화가 왔다. 동구권과의 수교가 이루어진 결과다. 한국의 민주주의 배당금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리고 30년 후 한국은 또 한 차례의 올림픽을 개최하게 됐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다.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장밋빛 전망이 나오고 있다. 600억 달러가 훨씬 넘는 경제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열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격(國格)과 브랜드가치가 한 차원 높아질 것이다 등등.
관련해 새삼 관심을 끄는 것은 평창 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가 내세운 ‘새로운 지평(New Horizons)’이란 슬로건이다.

올림픽 같은 국제 행사를 유치할 때 그동안 한국은 ‘분단’과 ‘평화’를 앞세운 감동전략을 구사해왔다. 말하자면 일종의 읍소(泣訴)전략이다. 그 전략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내세운 것이 순수 스포츠를 통해 상생을 추구하는 ‘새로운 지평’이라는 주제다. 그것이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들을 움직였다.

무엇을 말하나. 냉전시대의 분단국가라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한국이 나눔과 상생, 자유와 도전의 정신을 제창했다. 새로운 시대정신이랄까. 인류 보편의 이데올로기라고 할까. 그런 걸 제시한 것이다. 그 성장한 한국에, 한국 국민에 갈채를 보낸 것이다.

이는 동시에 시대가 달라지고 있고, 또 한반도를 바라보는 세계인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연아로 상징되는 한국, 한류(韓流)의 나라 대한민국만 보일뿐 그 너머에 있는 북한이란 존재는 시야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세계인의 시각으로 볼 때 한반도 통일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여 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통일 말이다.

사실이지 한반도는 더 이상 분단관리가 가능한 시대에 있지 않다. 게다가 이미 북한 체제위기의 시대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또 심화되고 있다. 한반도의 ‘스테이터스 쿠오’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결과로 오는 것은 그러면 무엇일까.

‘평창에의 선택’은 그런 날이 머지않아 온다는 것을 부지부식 간에 예언한 것
으로 들리는 것이다.

이래저래 기다려지는 것이 2018년이다. 한반도 남쪽에서 시작된 나비의 날개 짓은 한류를 타고 이미 거대한 태풍으로 변했다. 그런 마당에 한국은 또 한 차례 세계무대의 한 가운데 서게 되는 것이다.

그 해는 그리고 베이징올림픽이 치러진지 10년이 되는 해다. 어떤 거대한 변화가 한반도에, 더 나아가 동북아시아에 몰아칠지 왠지 기대가 되어서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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