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코리아 신드롬과 한국정치

2011-06-13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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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촛불이 켜졌다. 2011년 6월10일, 그러니까 ‘6. 10 항쟁’ 24주기를 맞아 한국의 대학생들이 서울 도심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번에는 등록금을 반으로 줄이라는 ‘반값 촛불’이 켜진 것이다.

그 한 밤의 시위 현장에 유력정치인이란 사람들은 죄다 몰려갔다. 한 국내 언론의 표현을 빌리면 학생들에게 ‘얼굴도장’을 찍기 위해서라고 한다. 일부 연예인들도 가세했다. 진보를 표방하는 사회단체들은 말할 것도 없다.

궂은 날 한 밤중에 켜진 수 천 개의 촛불. 그 불꽃 사이로 미친 소가 날 뛰는 환영이 어른거린다. 그 광경이 클로즈업 되면서 동시에 한 단어가 뇌리를 스친다. 뭐라고 했더라. ‘코리아 신드롬’이라고 했던가.


한국은 초(超) 저 출산율을 보이고 있다. 그대로 가면 2050년께 한국은 텅 비게 된다. 그리고 2300년께에는 한국인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민족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한국은 낙태에 있어 여전히 세계 넘버 1나라다. 신생아와 낙태로 햇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생명의 비율이 4대 3인 나라가 한국이다.

데이빗 콜먼이라는 인구문제 전문가가 이 같은 한국적 현상을 코리아 신드롬으로 명명한 것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한국과 같이 등잔 밑이 어두운 나라가 있을 수 있는가 하는 비꼼이자, 지탄이다.

그 코리아 신드롬은 그러면 인구 문제에만 국한 된 것인가. 또 다시 켜진 촛불을 바라보면서 그 증후군 증세가 가장 심한 곳은 정치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번 반값 촛불시위의 불을 댕긴 것은 한나라당이다. 재보선 선거에서 참패 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여당 원내대표라는 사람이 반값 등록금을 들고 나왔다. 당내 의견을 수렴한 것도 아니다. 당정 조율은 물론 없었다. 딴에는 순발력을 발휘해 이 같은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그 선심 공약에 표를 뺏길 수도 있다. 야당은 화들짝 놀랐다. 그래서 한 발 더 나갔다. 민주당 내 한 대권지망생은 ‘집권하면 등록금을 폐지하겠다’고까지 했다. 하여튼 이런 저런 경로를 거쳐 반값 등록금 전면시행은 야당의 당론이 됐다.

세 부담이 얼마나 늘어날지에 대한 고민도 없다. 국민은 안중에 없는 것이다. ‘교육은 국가의 100년 대계’라는 기본적 생각도 없다. 국가 재정이 거덜 나든 말든. 대학교육의 질이 퇴화하든 말든, 오직 표(票)에만 관심이 있을 뿐인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이란 사람들이 한 밤중에 또 거리로 뛰어나갔다. 누군가의 지적대로 한 쪽은 촛불에 델까 두려워서, 한 쪽은 정치적 이득을 취해 보겠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갈 때까지 다 간 포퓰리즘의 극치라고 할까.


반값 등록금은 부지부식 간에 단연 초미의 정치 현안이 되고 만 것이다. 북한 인권법 제정이니,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이니 하는 모든 어젠다를 제치고.
포퓰리즘의 위대한 승리라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 이 한국적 정치현상의 출발점은 어디서 찾아질 수 있을까. 코리아 신드롬이란 병리현상에서 그 단초가 찾아지는 게 아닐까.

왜 자녀를 낳지 않는가. 경제문제에서 여권(女權)에 이르기까지 여러 이유가 거론 된다. 그 근본적 이유는 그러나 다른 데 있지 않다. 자기 부정이다. 사는 것 자체가 짜증스럽다. 그리고 이 사회의 장래에 비관적이다. 그래서 자녀를 두지 않는 것이다.

그 자기 부정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가치 부정이다. 그 모습은 여러 형태의 병리현상으로 표출된다.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나라로 보는 자학의 사관이 그 한 모습이다. 경쟁력 부재의 한국 정치, 불임(不姙)의 정치, 상생은 없고 파괴만 일삼는 정치는 그 병리현상의 또 다른 모습이다.

“지금의 야당이 미심쩍은 것은 진보정책 때문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데 있다.” 한국 내 한 논객의 지적으로, 한국정치 병리현상의 근본원인을 바로 여기서 찾았다.

근본적으로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이 결핍돼 있다. 때문에 내건 정책은 말이 진보정책이지 진정성이 결여돼 있다. 그 야당은 그런데 집권을 위해서는 그 누구와도 손잡을 태세인 것이다.

그 야당의 정치공세에 혼란스러워한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꿔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것이다. 질질 끌려 다닌다. 북한인권법 상정을 무산시킨 것을 훈장이라도 되는 양 자랑한다. 그 정치수사에 현혹되어서인지 북한정책을 재고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제법 높아졌다. 그리고 기껏 한다는 것이 야당 정책의 벤치마킹이다. 그게 여당의 모습이다.

그 간극에서 난무하는 것이 거침없는 포퓰리즘이다. 이번 반값 촛불만 해도 그렇다. 여당이 꾀를 냈다. 그러다가 그 꾀에 스스로 빠져들어 허둥대는 모습이다.

2012년 선거정국이 벌써부터 우려된다. 또 다시 켜진 촛불은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 스며든 반(反)대한민국 세력의 반격 신호같이 보여서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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