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Sweetheart’ 완전 공감

2011-03-0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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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heart!” 미국인들이 자녀를 부를 때 이름 대신 곧잘 쓰는 말이다. 외동딸을 키우다보니 마음이 녹는 그 애틋함에 완전 공감이다.

부모는 자식이 많든 적든 하나 하나를 100%로 사랑한다. 세 자녀라고 33.33%로 나누어 사랑하지 않는다. 인류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가슴도 똑같다. 하나님께는 당신이 이 세상의 주인공이다. 누구나 태어나고 죽을 때는 철저히 혼자다. 당신이 없으면 세상도 없다.

하나님이 당신 한 사람을 전부로 보지 않았다면 굳이 몸을 입고 땅에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늘에서 적당히 응급조치만 취해도 된다. 그러나 무한하신 하나님이 당신과 똑같은 한 사람이 되셨다. 이것이 손수 지으신 각 사람을 일대일로 만나시는 놀라운 성육신의 신비다. 이제 당신은 더 이상 작지 않다. 무리 중의 이름 없는 한 존재도 아니다. 값으로 치면 ‘하나님짜리’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이 유명한 예수님의 복음 선포에서 ‘세상’은 그 안에 속한 각 사람이다. ‘그를 믿는 자’ 또한 원래 세상에 속해 있던 특정인이다. 그 안에는 무신론자나 창녀, 흉악범도 있다. 세상에 속한 누구든지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 지금 당신도 바로 그 ‘믿는 자’가 될 수 있다!

심판은 결코 무리를 대상으로 시행될 수 없다. 재판에서 형량은 개개인의 구체적인 죄에 대해 정확히 구형된다. 그처럼 속죄의 대상도 막연하지 않다. 믿는 자 각각의 개별적인 죄가 낱낱이 용서받는다. 예수님은 지금 불특정 다수가 아닌 믿는 사람 각자의 죄에 대해 영벌 심판의 철회를 약속하신다.

BC 15세기께,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압제에서 건져내실 때 어린양의 피를 그들 각 집에 바르게 했다. 당시 파라오 왕을 항복시키려고 이집트의 모든 장자를 치실 때 구원의 약속을 믿고 실제로 피를 바른 집들의 장자는 다 살아남았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 12:13). 유대인들은 지금도 이 날을 기념하여 유월절(Passover)로 지킨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전 날 열두 제자들과 이 명절을 기념하셨다. 그때 자신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나누시며 아주 특별한 약속을 유언으로 남기셨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 그 다음날 유월절 당일에 친히 어린양 대속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 이 유언이 구원의 효력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유언은 남긴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하기 때문이다(히 9:17).

목회현장에서 자녀의 갑작스런 죽음에 억장이 무너지는 이들을 가끔 본다. 쏟아 부은 사랑만큼 아픔이 크다. 죄는 그만큼 무섭고 현실적이다. 사랑하는 이를 눈앞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유일한 화근이다.

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하나님의 성육신 사랑 또한 대수롭지 않다. 당신의 죽음을 대신한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이 그저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당신이 믿든 안 믿든 이 세상 모든 인류의 죄를 다 합해도 하나님의 100% 아버지 사랑을 능가할 수 없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안 환 균<사랑의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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