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묘년을 여는 영웅의 꿈

2011-01-1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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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행복

1997년 설립된 ‘Freedom Writers Foundation’이라는 비영리 단체가 있습니다. 이 단체의 미션은 환경의 열악함 때문에 꿈과 목적의식을 잃고 방황하는 소위 문제아 학생들을 도와 그들의 버려진 꿈을 되찾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 단체를 설립한 것은 말만 번지르르한 정치인들도, 전문지식으로 교육환경 개선을 역설하는 저명한 교육학자들도 아닙니다. 에린 그루웰이라는 젊고 평범한 영어교사와 자칫 꿈을 잃고 영원히 방황할 운명에 놓였던, 그러나 에린과 함께 절망의 터널을 통과한 에린의 첫 임지 고등학교의 제자들에 의해서 입니다.

1990년 초, 대학을 갓 졸업하고 가주 롱비치에 위치한 윌슨고교에서 영어교사로 첫 걸음을 내디딘 에린 그루웰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인종차별, 갱, 마약, 가난 등에 둘러싸여 자란, ‘학업수행 절대불가’ 판정을 받은 흑인, 라티노, 아시안 등 소수계 문제아들이었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학교, 교사, 서로를 향한 증오심 뿐이었던 그들은 보며 당황한 그루웰은 그들에게 연민과 애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그들과 함께 할 작업을 구상합니다.


첫 번째 과제는 일상의 생각과 경험을 일기에 담고 발표하기였습니다. 불신과 의혹의 시선으로 가득한 문제아들의 마음에 열정으로 다가오는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싹트기 시작합니다. 한 아시안 학생의 진실한 일기 발표를 계기로 그들은 서로가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고통을 나눌 친구들임을 인식합니다.

에린은 두 번째 과제로 독후감 발표하기를 진행했습니다. ‘안네 프랭크’와
‘줄라타의 일기’를 읽으면서 홀로코스트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학생들은 참담했던 역사의 진실과 골방에 숨어서 매일 반복되는 공포 속에서 일기를 써 내려갔던 안네와 줄라타의 고통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독일군에 끌려가 최후를 맞이한 안네의 죽음은 그들의 마음의 장벽을 허물어뜨리는 계기가 됩니다. 그들은 변화를 경험하고, 주어진 삶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생전 처음으로 스스로 무엇인가를 계획하기 시작합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초대해서 체험담을 듣는 것입니다. 안네를 숨겨주었던 미프히스 할머니를 만난 학생들은 감격해 할머니에게 “당신은 영웅입니다”라고 말하지만, 할머니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영웅이 아닙니다. 단지 옳다고 생각한 일을 한 것뿐입니다. 우리는 다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각자의 길에서 작은 등을 켤 수가 있어요. 어두운 골목에 등불을 하나씩 켜듯이 올바른 일을 해나가는 것이 진정한 영웅입니다. 여러분의 선생님을 통해 여러분이 지금까지 해 온 얘기를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진정한 영웅입니다.”

학생들의 변화가 완성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오늘, 이 이야기는 ‘Freedom Writers Diary’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학생들의 대부분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단체의 핵심 멤버가 되어, 자신처럼 어려움에 처한 학생들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난세가 영웅을 부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경기가 진행형이고, 크고 작은 사건과 재난의 소식이 매일 지면을 메우는 혼란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영웅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합니다.

그러나 영웅은 멀리 있는 것 아닙니다. 미프히스 할머니처럼 여러분이 있는 그 자리에서 작은 등을 하나씩 켤 수 있다면 여러분이 바로 진정한 영웅입니다. 신묘년 벽두에 우리가 서 있는 어두운 골목마다 작은 등을 하나씩 켜나가는 또 다른 ‘Freedom Writers’의 환상을 그려봅니다. 평범한 영웅들의 ‘위대한 영웅담’을 기대합니다.


박준서(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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