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제임스 카비즐

2011-01-1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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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하는 삶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한 때 꿈꾸었으나 살아보지 못한 인생이 거기에 들어 있다. 지금도 꿈꾸고 있으나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인생도 그 안에 있다. 스크린 안에서 마음껏, 아니 더 치열하게 살아보는 영화배우들은 좋겠다.

영화 에어포스 원에서 미합중국 대통령 역을 맡은 해리슨 포드는 자유를 수호하는 최고 통치자의 역할과 인질로 잡힌 가족을 구하기 위해 갈등하는 한 남자의 역할을 소화했다. 사람들은 극중에서나마 대통령을 해보면 부러울 게 없겠다 한다. 최고의 스포츠 스타 역, 역사적인 위인 역, 현실 불가능한 수퍼맨 역…. 주인공 역할 수천 수만 가운데 나에게 골라보라 한다면 나는 단연코 예수 역을 꼽겠다. 사람의 아들로 오신 예수 역보다 더 이상 가는 가상체험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종종 나가는 우리 동네 미국교회에 최근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주인공 예수 역을 맡았던 영화배우 제임스 카비즐이 게스트 스피커로 초대되었다. 담임목사와의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된 간증에서 그는 배역을 맡게 된 동기와 촬영과정의 어려움, 그 과정을 통해 나타나신 하나님을 힘 있게 소개하였고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그의 메시지에 큰 감동을 받았다.


감독 멜 깁슨이 처음 예수(Jesus Christ) 역을 제의하였을 때 그가 던진 대답은 널리 알려져 있다. “나는 지금 33세이고 내 이름의 이니셜도 J.C.입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그때의 심정을 좀 더 상세히 설명했다. “내가 정말 그 역할을 할 수 있겠는지… 주님께 묻고 또 묻고 많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결심을 했지요. 하나님은 언제나 최고의 사람을 쓰시지는 않습니다. 나 역시 부족하고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이 시키실 때는 거역할 수 없으며 내게 주신 최선을 다할 뿐인 거죠.”

그는 배역을 맡은 이후 더욱 기도에 집중하였으며 기적 체험자들을 만나고 기적이 발현된 천주교 성지를 찾아가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다시 한번 체험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촬영은 쉽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마지막 12시간을 담아내는 과정에서 그는 수면 부족과 타이트한 일정 때문에 기진맥진한 상태였고 매를 맞는 장면에서는 실제로 등에 상처를 입어 병원으로 실려갔는데 아직도 15인치 길이의 흉터를 가지고 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어깨가 탈골되었고 6피트가 넘는 만능 운동선수 출신의 이 영화배우는 십자가에 달려 있는 동안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믿음을 머리에 담아둔 사람은 언제나 넘어지지요.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가슴 안에 계십니다.” 그의 신앙 고백이다. 교인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의 메시지를 전해달라는 부탁에 그는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역할’을 하며 살아갑니다.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과 누구 역할을 하며 사는가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진실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가 우리에게 말한다. 역할을 벗은 진짜 ‘나’로 살아가라고.


김범수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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