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의미 없는 중얼거림

2011-01-1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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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노인에게서 중얼거림을 듣는다.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귀담아 들어보아도 알아들을 수 없다. 그저 중얼중얼 말하는 건데 말하는 본인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생각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입이 움직이는 대로 말하는 것이 중얼거림이다. 의미 없는 중얼거림을 말하는 사람을 흔히 망령 들었다, 혹은 노망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메시지를 알면서도 남들이 알아듣기 힘들게 일부러 중얼거리는 것은 자기 속을 숨기는 것이며 중얼거림이 아니다. 양노원에 가보면 중얼거림을 더 많이 들을 수 있다. 외로움이 의미 없는 중얼거림을 더 생산하는 것이다.영어의 Stuttering은 중얼거림이란 뜻 이외에 말더듬도 가리키는데 이런 상황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과학계의 큰 화제가 되고 있다.
Stuttering 재단의 총재 제인 프레이저 박사는 “말더듬을 일으키는 유전자 세 개를 발견하였는데 아직 그중 어느 것에 의한 것인지는 찾지 못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이 연구가 진전되면 언젠가 말더듬을 의학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노인의 중얼거림은 말더듬과는 거리가 멀다. 할아버지들 보다는 할머니들에게 중얼거림이 많다. 그것은 남자가 평균 5년쯤 빨리 세상을 떠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뿐일 것이다. 옛날에는 시어머니에게 혹사를 당한 것이 한이 되어 늙으면 시어머니에 대한 화풀이가 중얼거림으로 나타난다고 말했지만 요즘은 별거를 하기 때문에 고부(姑夫)간의 미움이 중얼거림까지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중얼거림은 불평불만과 관계가 깊다. 속에 불만이 있으면 어떤 형태로든지 표출되기 때문에 중얼거리게 된다.


필자가 쓴 우화 한 편을 소개한다. 한 나그네가 길을 가고 있었다. 먼 길이어서 피곤해졌다. 햇볕까지 뜨거워 짜증이 난다. 그는 긴 여행을 후회하였다. 그러다가 길바닥에 있는 돌멩이를 차 버렸다. 그는 돌멩이에게 중얼거렸다. “도대체 네 놈은 왜 하필 이 자리에 있었느냐!” 화가 나서 그 돌멩이를 한 번 더 찼다. 그랬더니 돌멩이가 바위가 돼 버렸다. 그는 “이건 우연이 아니다. 나를 미워하는 놈이 여기에 놓았을 거야.” 하며 또 한 번 찼다. 돌멩이는 더 큰 바위가 되어 앞을 가로막았다. 몹시 화가 난 나그네는 돌멩이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바위를 내 앞에 놓은 것은 원수처럼 미워하는 그 놈 밖에 없어.”하며 이제는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욕설을 늘어놓았다.
이 때 지나가던 한 소녀가 물었다. “선생님 어디가 편찮으셔요? 돌멩이에게 무슨 이야기를 많이 하시던 것 같은데요.”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생긴 일을 소녀에게 말해 주었다. 소녀는 두리번거리더니 “그렇게 큰 바위는 보이지 않는데요. 주먹 만 한 돌멩이는 하나 있지만요.” 하며 소녀는 작은 돌멩이를 가볍게 집어던지고 길을 갔다.

우리가 가진 문제가 많다. 새 해에도 또 새로운 문제들이 우리 앞을 가로막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그네가 돌멩이를 차는 것 같은 부정적인 방법이나 나그네의 불평 같은 부정적인 마음씨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대가 불평할 때 두 가지만 알아두라. 그대의 불평을 듣는 사람의 절반이 그대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남은 절반은 그대에게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오히려 재미있는 이야깃거리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불평한다고 해도 당신에게 조금도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손해만 볼 것이다.그대가 가죽 장갑이 없어서 불평할 때 손 없는 사람을 생각해 보라. 그대가 유명상표의 구두를 못 신을 때 발 없는 사람을 생각해 보라. 그대의 불평을 팔 생각은 하지 말라. 그런 것을 살 사람은 없다.

옛 이스라엘인들은 이집트로부터 해방을 받지만 광야 40년의 여행을 불평하는 세월로 채웠다. 그 불평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 데서 나왔기 때문에 죄가 되었다. 성경이 말하는 죄의 정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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