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버지의 세뱃돈

2011-01-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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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병 임(논설위원)

새해가 온 지 일주일이 되었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이 올 것이지만 사람들은 새해가 오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 까 기대를 한다.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커다란 변화가 오는 것은 두렵고 지금 이 상태에서 그저 좀 더 편한 삶이 되기를 바라는 것 같다.12월 31일이나 1월 1일이나 사실 다 같은 시간이고 가는 세월이지만 사람들은 마음을 다잡거나 반성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계기로 삼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신년 벽두에 지난 12월에 큰 실수를 한 것을 발견했다. 아버지의 기일을 잊고 지나간 것이다. 이민 초창기라서 ‘살기 바빠서’도 아닌데, 오히려 지금은 식구가 단촐해 져서 잘 챙길 수도 있는데, 그저 돌아가신 아버지가 머릿속에 없었던 것이다.2일 날 새해 인사도 할 겸 서울 친정오빠에게 전화를 했다.10년 정도는 기일 때마다 부모님 제삿상에 놓을 조기 한 마리라도 사놓으라고 작은 정성을 보내었지만 “이곳 걱정은 하지 말고 그곳에서 너나 잘 살아라”는 오빠의 한마디가 은연중에 머릿속에 자리 잡아선지 몇 년 전부터는 그것도 잊어버렸다. 어떻게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신 분의 기일을 잊어버릴 수 있었는지 기가 막히지만 한편으로, 워낙 멀리 떨어져 살다보니 가족의 경조사에 참여 못하는 일이 한 두 번 이었던가 싶어 스스로 자위하기도 한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에 자주 가서 일가친척을 만나 회포를 푸는 사람도 많지만 수십 년동안 가지 않는 사람도 많다. 뉴욕에서 자리 잡고 살면서 한국 떠난 지 20년, 30년이 되었다는 사람을 보면 물어본다.“그동안 한 번도 가보고 싶지 않았어요?”그 긴 세월을 자신이 태어나고 뼈대가 굵어진 고향 땅을 떠나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모든 가족이 다 이곳에 이민 왔기에 굳이 갈 일이 없었다”는 말을 이해하기도 한다.그런데 대부분의 한인들은 고향이고, 추억이고 다 잊고 살던 일들이 명절이 되어 떡국을 먹다보면 새록새록 살아 오른다고 한다. 신정과 구정, 보름 전후로 한국 마켓에 가면 가득 쌓여 있는 사과와 배 박스, 떡국과 만두가 날개돋힌 듯 팔려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린 시절에 명절이 다가오면 온가족이 동네 목욕탕에 가는 것은 집안의 대사였다. 아버지, 엄마, 언니, 오빠, 동생 모두 우르르 몰려가서는 남탕, 여탕으로 나누어 들어가 묵은 때를 벗겨내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새해를 맞았다.
탕 안에서 소리를 지르면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커다란 원형 천정에 맺힌 물방울이 목과 등에 차갑게 떨어지기도 했다. 수시로 주인아주머니가 긴 장대에 그물망이 달린 뜰채를 갖고 와서 욕조위에 둥둥 떠다니는 허연 때를 건져내기도 했다.구멍이 난 바지와 양말을 버리고 새로 산 비로도 치마와 새하얀 블라우스를 입는 새해에는 입도 호사를 했다. 마땅한 간식거리가 없던 그 시절에 곶감, 홍시, 강정, 떡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명절날 아침, 새 옷을 입고 집안어른들에게 서툰 몸짓으로 세배를 하면 한 푼씩 쥐어주는 세뱃돈을 받을 때는 얼마나 기뻤던지, 신이 나서 그 세뱃돈을 들고 동네 구멍가게로 달려갔다. 용돈이란 것이 없던 그 시절, 돈 주고 사먹는 과자나 사탕은 정말 맛있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1년 내내 명절을 기다렸다.

지금 이 나이에는 아이들과 어린 조카에게 세뱃돈을 주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번쯤은 부모님이 살아오셔서 주는 세뱃돈을 받고 싶다. 오래전 돌아가셔 얼굴도 아련하지만 우리 아버지, 엄마에게 정성껏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으면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것 같다.올 한해에도 우리는 살아내야 하고 각자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사는 재미와 즐거움을 스스로 찾으면서 서로에게 복을 빌어주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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