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탄의 교회공격 전략

2011-01-0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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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윤실 호루라기

공격적이며 적극적인 교회가 성장한단다. 그럴듯하게 들린다. 싸워야 하며 피 흘려야 한다. 그러나 엉뚱한 대상과 싸우고 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성장하기 위해 이웃 교회와 싸워야 하며, 목회자가 살아남기 위해 반대파 교인들을 죽여야 하며, 잘못을 숨기기 위해 불의한 방법으로 세상 법정에 고소해야 한다. 정말 눈뜨고 볼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래도 순진한 교인들은 순종을 제일로 믿으며 따라가고 있다.

세상은 불경기로 짙고 어두운 터널로 흡입되고 있다. 그런데도 교회는 호황을 누려도 되는 것인가? 헌금이 많이 들어왔으니 교회 증축하고 살찌워도 괜찮다는 어리석은 목사들이 있다. 성경의 최종 결론은 종말을 마음에 새기며 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저들이 읽는 성경에는 종말은 없는가? 종말이 오기 전에 교회의 종말이 먼저 올 것 같다.

구약 성경의 실제 인물인 ‘욥’의 삶을 통해 현대 교회의 잘못된 경영원칙을 읽어 본다. ‘욥’을 시기한 사탄의 악독함이 묘사된다. 사탄은 불의한 자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욥’을 걸고 넘어지는 사탄의 중요한 언어가 있다. 욥이 어떻게 ‘까닭 없이’ 하나님을 섬기겠는가, 이다. 하나님은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으시고 ‘까닭 없이’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실을 증명해 보도록 욥을 맡기셨다. 결론은 사탄의 이론이 틀렸고 하나님의 판단이 옳았다.


기독교인들은 과연 ‘까닭이 없으면’ 하나님을 쉽게 저버릴 수 있을까! 반드시 보이는 혜택이 있어야만 예수 믿는가? 욥은 사탄이 고안해낸 ‘까닭과 혜택’인 자녀들과 큰 재산이 없어져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다. 사탄의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하나님도 신앙도 팽개칠 것’이란 두 번째 전략을 썼지만 그것마저 실패했다. 정말 긴 전쟁이었지만 욥은 승리했다.

교회는 지금도 욥이 당했던 유형의 시험을 수없이 당한다. 다른 점은 욥은 승리했지만 교회는 영락없이 넘어지며 실패한다는 것이다. 교회들은 여전히 보이는 혜택과 세속적인 유물사관의 ‘까닭’에 머물러 있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리는 목회자와 교회가 더 많은 복을 받은 것이라 속인다. 욥은 ‘발가벗고 태어났으니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않은들 무슨 상관인가, 소유한 모든 것을 여호와께서 주셨으니 그 분이 또한 가져가시니 오히려 여호와께서 찬송을 받을 것이라’ 했다. 현실을 그렇지 않다. 부자교회가 더 많이 가지려 하며, 대형교회가 더 많은 교인을 도둑질한다. 사탄은 이러한 지도자의 욕심을 꿰뚫어본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모든 교회가 이런 수준에 머물도록 지도자의 생각과 방향을 오염시킨다.

개혁자 칼뱅은 개혁교회를 향해 이렇게 외친다. ‘신자는 언제나 자신을 버리고 개혁함으로써 최후의 완성을 향해 열려 있는 종말론적 삶을 살게 된다’고 했다. 신자들의 끊임없는 자기 부정과 개혁을 강조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교회는 사탄의 공격 아래 있지만 또한 하나님의 지속적인 보호 아래 있기 때문이다. 모으는 것에만 집중하지 말고 예수님의 동생 유다의 외침에 잠깐 귀 기울이면 어떨지. ‘저희는… 너희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손경호 보스톤성령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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