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복음 이야기 - 구원의 때는 바로 지금

2010-12-2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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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내 얼굴도 저기 들어 있겠지.’ 목회 현장에서 장례식을 집례할 때면 고인의 사진 앞에서 가끔 드는 생각이다. 일부러 내 이름 앞에 ‘고’라는 말도 붙여본 적 있다. 다들 반가워하지 않을 상상이다. 그러나 죽음은 제3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연평도 포격사건이 터졌을 때 전쟁은 더 이상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볼거리가 아니었다. 일시에 모든 일상을 정지시키는 현실이었다. 죽음도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삶에 정지신호로 찾아오겠구나 싶었다.

당신이 죽고 나서 눈을 떴을 때 그곳이 불못이라면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한다. 구원의 기회는 ‘지금 이 곳’에서만 주어진다. 뒤로 미룰 여분의 시간이 전혀 없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 27:1).

2,000년 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그 날, 이 땅 모든 사람의 죄가 그 거칠고 무거운 나무 형틀 위로 다 옮겨졌다. ‘내가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슥 3:9). 지금 당신이 할 일은 그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믿음의 눈으로 올려다보는 것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15).


BC 15세기 무렵,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탈출한 뒤 시나이 광야를 지나갈 때의 일이다. 많은 사람이 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민 21:8)고 약속하셨다. 예수님은 지금 바로 그 역사적 사건을 들어 자신의 십자가 대속 죽음의 효력을 확증하신다.

영원하신 하나님께는 시간 개념이 없다. 그분은 과거나 미래를 다 현재로 보신다.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각 사람이 자신의 일생을 쭉 돌아보는 데는 단 1초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인류사의 시작과 끝을 동시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당신의 죄도 한눈에 다 보셨다. 그 구원을 당신에게 적용하시는 때 역시 바로 지금이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지금 당신은 마치 독사에 물려 독이 퍼져가는 상태에서 호흡만 간신히 내쉬는 중환자와도 같다. 치료약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첫 사람 아담이 뱀의 유혹에 물려 죽을병에 걸린 뒤부터 모든 사람은 시한부의 사형수 인생을 산다.

온 몸이 꼼짝 못해도 눈동자는 움직일 수 있다. 바로 지금 눈을 돌려 장대 위를 쳐다보라. 당신은 그를 모르지만 그는 십자가에 매달리는 그 순간에도 당신을 아셨다. 그리고 당신의 죄를 기꺼이 다 지실 만큼 사랑하셨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니라’(벧전 2:24).

2,000년 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무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분이 나신 해를 전후로 BC와 AD 안에 생일을 두고도 죽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만은 예외다. 전쟁이 두려운 이유는 죽음이 두려워서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죄 때문이다. 두려워하는 죽음을 결코 피할 수 없다면 당신의 삶에는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다. 모두에게 바로 지금 구세주가 필요하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안 환 균 <남가주사랑의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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