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뉴욕! 뉴욕의 크리스마스

2010-12-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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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땡스기빙이 지나면서 뉴욕 거리는 예쁘게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상가 안과 쇼윈도우, 도로마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장식이 휘황하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무리, 캄캄한 하늘에 빛나는 별장식 등 도시 전체가 화려한 꿈을 꾸는 것 같으니 저절로 프랭크 시내트라의 ‘뉴욕 뉴욕 뉴욕’ 노래가 나올 지경이다.

기나긴 불황은 이제 끝나가는 지 이번 12월 미국 소비자들의 소비심리가 6개월래 가장 양호한 상황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래선지 거리에는 백화점 샤핑 백을 잔뜩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 보인다. 이것은 보는 이의 마음이 작년보다 편해졌다는 것일 수도 있겠다.지금도 불가사의한 것이, 여름에는 에어컨을 일정한 시간에만 켜고 겨울에는 히팅 온도를 내리는 등 조금이라도 전기요금을 아끼고자 발발 떠는 소시민들이 연말 시즌 크리스마스 장식에는 돈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단독주택의 창문부터 현관, 지붕, 처마, 옥상, 굴뚝까지 또 앞마당과 뒷마당은 물론 담장, 나무와 하늘 위까지 라이트를 장식하여 한밤내내 화사한 빛을 주위에 선사한다. 장식물에는 아기예수
와 동방박사, 하늘로 날아오르는 루돌프 사슴과 산타 할아버지가 있고 장난감 병정, 색동 캔들과 선물상자, 각종 캐릭터 인형도 있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소문난 퀸즈 베이사이드나 화잇스톤 지역의 일부 집들은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가서 구경하고 사진을 찍어갈 정도로 집안팎이 모두 크리스마스 세상이다.어느 동네는 앞뒷집이 경쟁하듯 정성껏 꾸미는데 크리스마스 장식 구경을 하러 돌아다니다보면 골목마다 특색이 있어 그 동네 사람들은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도 짐작하게 된다. 길을 지나다가 화려하게 불 밝힌 집을 보면 한 번 더 돌아보게 되고 아무런 장식도 없이 불 꺼진 집을 보면 어둠의 세계 속에 있는 것 같다. 이렇게 하룻밤 내내 불을 켜 놓는다면 적어도 한달 전기료가 수백 달러에서 1,000달러 이상 껑충 뛸 텐데 이 시즌만은 다들 돈 걱정 안하는 백만장자의 마음이 되는 모양이다.아니 그것은 다른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려는 깊은 배려와 넓은 마음씀씀이다. 모르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위해 수고한 손길이 마련한 따스한 분위기는 어느 누구의 차가운 마음이라
도 녹여줄 것 같다. 한사람이 불을 켜놓아 다른 사람의 가슴에도 불을 켜게 하는 것이다.

우리 집은 이번 겨울에는 식구들도 없고 손님 초대도 안하기로 했으니 거창한 트리를 하지 말고 조용히 그냥 지나가자고 했었다. 그래서 남이 켜놓은 크리스마스 장식만 예쁘네 하고 즐기다가 내일 모레 당장 크리스마스가 닥친다니 아무래도 섭섭했다. ‘있는 장식 그대로 두었다가 국 끓여먹을 것도 아니고’ 싶고, 대학 기숙사에 간 아이가 크리스마스 방학으로 집에 온다는 핑계를 삼아 22일 밤, 기어코 지하창고에 내려가 뒤늦게 크리스마스 장식을 찾아내 왔다.
크리스마스 오너먼트와 장식을 꺼내고 현관에다 새하얀 별모양 라이트를 켰더니 금방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왕 크리스마스를 즐기기로 한 것 확실하게 저지르자 싶어서 온식구가 25일 맨하탄 라커펠러 센터 트리를 보러가기로 했다. 라커펠러 센터 트리와 트럼펫 부는 아기천사상, 삭스핍스 백화점
의 눈꽃 장식이 시간 맞춰 노래하는 것을 처음 보고 들었을 때의 감격을 다시 누리고 싶다. 42가 브라이언트 팍에 가서 가건물 상가에서 파는 뜨거운 애플 사이다를 마시며 캐롤이 흘러나오는 야외 스케이트장도 구경할 것이다.처음 미국에 와서 연말이면 찾아다니는 곳들을 살기 바빠서 10년 이상 나 몰라라 했는데 굳이 그럴 일도 아닌 것 같다. 뉴욕에 살고 있으니 뉴욕을 즐기는 것도 잘 사는 방법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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