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독교인의 전쟁

2010-12-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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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준 영 (자유기고가)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앞으로도 형태만 다를 뿐이지 아마도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계속 되어질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인류의 멸망은 인류의 마지막 전쟁으로 인할 것이라는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닐 것이다. 역사적으로 침략전쟁이 아닌 방어전쟁은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왔다. 1, 2차 세계대전 뿐 아니라 지역적으로도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방어적 전쟁에 패한 지역에선 아직도 고통과 억압이 존재한다. 그런 고통을 존재하게 두는 것에 대한 신의 섭리를 온전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고통이
엄연히 존재하는 한, 그런 고통의 존재 자체가 어쩌면 전쟁의 필요성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성경 속에서도 군인의 존재를, 그리고 전쟁 자체를 부인하는 말은 없다. 연평도 폭격, 그것은 전쟁이다. 사람들이 정하는 선악의 기준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악은 구별되어진다. 그런 악에 의해 사람들은 고통을 받는다. 그 폭격은 엄연히 그 뿌리가 그런 악에서 나온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악한 마음을 가진 이들의 폭격으로 인해 한창의 젊은이들이, 이웃이 무고한 생명을 잃고 아픔을 당한다.
전 국민이 그로인한 아픔을 갖는다. 그에 대해 사람들은 강한 응징을 주장하기도, 그래도 대화와 평화만을 주장하기도 한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수하라”는 성경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이 주는 의미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악한 뱀을 물리칠 수 있는 그 보다 더욱 강한 능력과 지혜를 가지라는 것과 그럼에도 비둘기같은 순수함을 잃지 말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악한 뱀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비둘기가 아니라 그 보다 더 강하고 지혜로운 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 국가의 정보, 무력을 동원해 죽기를 불사하고 응징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항상 비둘기 같은 선한 마음으로 그를 행해야 한다는 것도 의미한다. 그것은 언제든 그들의 진정성이 선한 모습으로 돌아서면, 그럴 가능성이 보이면, 즉시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함을 말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런 강한 반응, 응징 속에서도 도망갈 길을 열어 줄 수 있는 사랑의 뿌리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그들은 대응하고, 박멸해야할 적이지만, 그들의 영혼은 구해야 할 형제이기 때
문이다.

최소한 평화와 사랑을 강조하는 기독교인들이 증오와 복수심만으로 인하여 전쟁을 치르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기독교와는 아무상관이 없는 전쟁이고 이미 영적전쟁에서는 백기를 든 전쟁이 될 것 같다. 그래서 기독교인의 전쟁은 어쩌면 더 힘든 전쟁일 것이다. 그러나 그 두 가지 전쟁을 함께 수행하는 전쟁만이 진정한 평화를 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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