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지막 크리스마스트리

2010-12-2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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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민 자 (의사)

존 에드워드 미국 전 상원의원 의 부인인 엘리자베스 여사가 6년간의 암 투병 끝에 지난 12월7일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녀는 죽음을 삼일 앞두고 숨을 쉬기도 말하기조차 힘들었으나 세 자녀와 함께 그녀의 마지막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했다. 전국 주요 언론은 일제히 그녀의 감동적인 죽음을 긴급뉴스로 보도해 미국인들의 가슴을 적시었다.

그녀는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 아내로 손꼽히기도 했다. 유능한 변호사이자 남편의 정치 파트너로 연쇄적으로 닥쳐오는 비극을 극복하는 치열한 삶으로 눈부신 조명을 받았다. 그녀는 2004년 남편이 존케리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조지 부시와 딕 체니 팀과의 캠페인 최전선에서 불꽃 튀기는 선거유세를 치르고 있을 때 유방암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에게 즉시 알리지 않았다.
그녀는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 가발을 쓰고 남편과 함께 CNN 인터뷰 프로그램인 래리 킹 라이브(Larry king live) 에 출연했다.


그때 진행자 래리 킹이 물었다. “왜 당신은 유방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즉시 남편에게 알리지 않았는가?” 그녀는 이슬이 젖은듯한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며 “나의 암 선고가 알려져 선거유세에 미치는 영향이 두려웠다. 더욱이 남편의 대선의 승리가 자신의 병보다 더 우선순위였기 때문이다” 라고 답한다. 진보적인 이슈로 첨단을 달리던 그녀의 대답은 정말 뜻밖이 아닌가? 그러나 그 후 남편은 혼외정사로 딸아이까지 낳아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그녀는 존 에드워드 상원의원과 법과대학에서 만나 결혼하였고 남편은 의료상해 소송에서 화려한 승소업적을 남기고 억만장자가 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암초에 부딪쳐 침몰하기 시작한다. 1996년 16살의 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 세상에 자식을 잃는 슬픔보다 더 큰 형벌이 있을까?

그녀는 아들을 잃은 상실감에서 벗어나 48살의 늦은 나이에 아기를 낳고 50세에 또다시 아이를 낳으며 새로운 삶을 재충전시키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유방암 선고, 남편의 혼외정사로 인한 정치생명의 추락으로 계속해서 불행이 이어진다. 금년 6월, 그녀는 남편과 헤어진 후 암 재발로 다시 투병을 하는 동안 Larry King Live 인터뷰 프로그램에 다시 출연해서 이렇게 말
했다. “나의 말기 암은 나를 결국 쓰러트릴 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나의 삶에 대한 의지를 꺾을 수는 없을 것이다.”

Larry King 진행자는 남편을 아직도 사랑하느냐고 다시 묻는다. 그녀는 “나와 헤어진 남편은 아직도 내게 중요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항상 지켜줄 수 있는 이 세상의 단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아버지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면 한다.” 고 대답한다.그녀의 아이들에 대한 애정은 남편에게도 동등하게 분배되었다. 그녀는 암투병중에 ‘Resilience(재생)’ 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암 세포가 그녀의 온 몸의 세포를 파괴하는 무섭고 혹독한 시간 속에서 세 자녀가 자라서 읽을 수 있도록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의 이정표 같은 글을 미리 남기는데 열정을 쏟아 부었다.

아이들이 방향감각을 잃었을 올바른 길을 향해 찾아가는 삶의 GPS 같은 글이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의 덫에서 자유롭게 가족을 풀어놓아주고 싶었다. 그녀의 마지막 크리스마스트리는 그녀의 마지막 생애를 아름답게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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