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연중 칼럼 - 치치칠~ 렐렐레

2010-12-2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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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중 축구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

물론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잉글랜드 프로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지성 선수나 이청용 선수를 모르거나 알아도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필자는 유난히 축구를 좋아하고 특히 박지성 선수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열성 팬 중의 한 사람이며, 그가 소속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팀의 TV 중계 스케줄을 모두 외우고 있으며, 혹시 중계를 못 볼 특별한 일이 있을 땐 녹화해 놓았다가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축구광이다.

그런데 지난주 리그 1, 2위를 다투는 중요한 일전이었던 맨유와 아스널팀 간의 경기에서 박지성의 결정적인 헤딩슛 하나로 경기를 이겼고, 때마침 이 때 맨유의 홈구장 올드 트래포드를 방문한 칠레 광부들이 있었다.


경기시작 전 맨유의 감독인 퍼거슨은 모든 선수들에게, 그 때 관중석에 있던 칠레 광부들을 예로 들면서, 팀웍과 정신력을 강조했었고, 경기 전 인터뷰에서는 “칠레 광부들은 우리 삶의 표본이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들이며, 그들의 팀웍이 용기가 바로 승리의 표본이다”라고 말을 했었다.

그 말을 들었을 박지성이 결국 승리의 골을 만들어냈으며, 경기 후 맨유의 구단주는 “특별히 방문해 준 칠레 광부들에게 감사한다”고 인사하며 그들에게 승리의 공을 돌렸다.

몇 달밖에 되지 않은 일이라서 모두들 기억하겠지만 이 칠레 광부들이 얼마 전 광산 갱도에 매몰된 지 69일 만에 구출되었고, 전 세계인이 그 장면을 보고 기뻐했었다.

그때 구출되었던 광부들 33명 중에 스물여섯명이 맨유의 전설이라는 바비 찰튼의 초청으로 이 경기를 관람했었고, 이 광부들이 보는 앞에서 우리의 박지성 선수가 골을 넣어 경기도 이기고 그가 아주 자랑스러웠다. 축구 얘기는 언제 해도 재미있는 일이지만, 오늘은 그 33명의 칠레 광부들 이야기가 훨씬 더 의미 있으리라 생각된다.

금년 8월5일 칠레에서 그 나라 수출의 주력상품인 구리와 금을 채굴하는 칠레 북부 산호제의 광산에서 33명의 광부들이 지하 700미터의 갱도에 갇히게 되었다는 뉴스였고, 다행히 지난 10월14일 69일 만에 세계가 열광하는 가운데 33명 모두가 구출되는 경사가 있었다.

모두들 건강하고 기쁨이 넘치는 얼굴로 구조되어, 지진으로 피폐해진 모든 칠레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졌을 뿐만 아니라 사고소식을 듣고 간절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물심양면으로 성원을 아끼지 않았던 세계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었던 기쁜 소식이었다.

광산이 무너져 광부들이 매몰되었다는 소식이 있은 후 무너진 광산 아래로 소형 카메라를 내려 보내길 여러 번, 사고가 난지 17일 만에 드디어 비교적 뚜렷하게 그들의 얼굴이 찍힌 사진을 보게 되었고 33명 전원이 살아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살아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기름이 섞인 지하수로 버텨온 광부들에게, 수도파이프 같이 생긴 작은 관을 통해 산소와 음식이 공급되기 시작했으며 미국을 비롯한 선진기술을 가지고 있는 여러 나라들과의 협력으로 광부들이 갇혀 있는 곳까지 터널을 뚫어 그들을 구출하게 되었다.

이렇게 참사로 끝날 수도 있던 이번 광산 매몰 사고를 인간 승리의 감동적인 서사시로 끝맺을 수 있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33명 광부들의 인내심과 서로에 대한 배려, 그리고 이전에도 광산에서 14일간 매몰되었던 경험을 했던 우르수아라는 이름의 현장감독의 조직적인 리더십이 중요했을 것이다.

우리 한국의 국제경기가 있을 때마다 응원구호가 되버린 “대~한민국”처럼 칠레에서도 “치치칠~렐렐레”하는 칠레 국민 고유의 구호와 함께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지하 700미터의 좁은 공간에 갇혀 있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광부들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떤 시련이 닥쳐왔을 때 마음가짐을 어떻게 갖느냐가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변수가 되는지를 일깨워주는 이야기가 하나 떠올라 옮겨본다.

옛날 아들과 먼 길을 떠났던 아버지가 여행 중에 길을 잃어 뜨거운 사막을 헤매게 되었다. 가지고 있던 식량과 물은 모두 떨어지고 불같이 뜨거운 태양 아래 몸을 기댈 나무 한 그루 없는 모래밭 한 가운데서 두 사람은 곧 쓰러지게 되었다. 그러니 어쩌면 당연하게 아들은 원망과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더 이상 걸어보았자 살 수 있는 아무 희망도 없다며 차라리 이 자리에서 편히 죽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조금만 더 가면 시원한 물과 마을이 나타날 것이라며 아들을 달래고 달래며 걷던 중 눈앞에 커다란 무덤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것을 본 아들은 더욱 절망해 울부짖으며 이 무덤 속의 누구처럼 우리도 곧 죽게 될 것이라고 하며 아버지를 원망하자 아버지는 우는 아들에게 말하기를 무덤이 있는 것은 마을이 가깝다는 표시이니 조금만 더 가보자고 달래며 계속 걸었다고 한다.

그러자 얼마 안 있어 아버지의 얘기대로 마을이 나타났고 그 부자는 곧 편안한 안식을 취할 수 있었다고 한다.

(213)272-1234


정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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