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공지능 시대의 미술… 보다 더 진실한

2025-11-05 (수) 12:00:00 김노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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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인류는 12월 25일이 아니라 11월 30일을 더 신성시하고 기념할지 모른다. 2022년 11월 30일, 챗GPT가 일반 대중에게 처음 공개됐기 때문이다.

이후 인공지능(AI)은 불과 3년 만에 전세계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중심 화두로 떠올랐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는 AI를 미래 산업의 핵심으로 규정하며 대규모 투자와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연일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우리는 AI가 선택이 아니라 필연, 물과 공기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얼마 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청년미술가 기획전에는 박준석 작가의 흥미로운 작품이 등장했다. 작가가 전통 방식으로 회화를 제작하고, 이를 바탕으로 AI와 대화를 나누며 이미지를 변주한 작업이었다.


원본과 협업 결과물이 나란히 전시되자, 회화라는 오래된 매체와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도구가 서로를 비추는 장면이 만들어졌다. 작품성의 높고 낮음을 떠나, 인간과 AI의 협업 자체가 하나의 미술적 사건처럼 다가왔다.

예술과 기술의 결합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이미 1990년대 정보화 사회의 도래와 함께 반도체, 디지털 기술, 인터넷은 예술가들의 화두였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가 본격적인 정보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미술 역시 데이터와 네트워크, 알고리즘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품어왔다. 오늘날 AI는 그 연장선상에서 가장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되었다.

예술의 영역은 특히 그렇다. 이제 미술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회화의 정규 훈련을 거치지 않아도, AI의 도움을 받아 ‘작가’로 활동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실제로 수많은 젊은 창작자들이 이미지 생성 AI를 활용해 작품을 만들고 전시한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듯, 예술가들은 AI와 협업하며 새로운 창작의 감각을 탐구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과연 무엇이 인간 고유의 창작이고, AI와의 협업이 만들어내는 예술은 어디까지 ‘우리의 것’인가?

AI 시대의 미술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AI는 새로운 문명사적 변화를 이끌로 있다. 변화는 산업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AI는 우리의 사고와 상상, 감정과 창작의 방식까지 흔들어 댄다. 전문가들은 AI 시대일수록 ‘인문주의’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인간 자체에 대한 물음이 빠진 기술은 방향을 잃기 쉽기 때문이다. 인문학적 성찰 없이는 예술도 기술도 길을 잃고 인류 문명에 긍정적 변화를 만드는데 실패할 것이다.

인간과 기계가 함께 만들어내는 새로운 미학, 그리고 그 속에서 여전히 놓치지 말아야 할 인간다움이 점차 중요해진다. 예술은 기술과 협업하며 우리 자신에 대해 질문한다. 삶과 예술의 가치를 묻는다. 예술과 예술가의 정의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AI도 이를 독려하고 있다.

<김노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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