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물도 전기도 없는 ‘뫼끼’ 오막살이… ‘북유럽 선진국, 핀란드’

2025-09-24 (수) 12:00:00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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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 라플란드 키틸라

북유럽 핀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로 자주 꼽힌다. 올해 3월 영국 옥스퍼드대 등이 발간한 '2025년 세계행복보고서(WHR)' 국가별 행복 순위에 따르면 핀란드 사람들이 스스로 매긴 행복 점수가 147개국 중 가장 높았다. 2018년 이후 8년 연속 1위다.

행복의 비결 중 하나는 특별한 여름휴가다. 이들은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향한다. 현대식 주택을 떠나 ‘뫼끼(오두막)’라 부르는 숲속 작은 집에서 휴가를 보낸다. 현지에서는 전 국민 5명 중 1명이 뫼끼를 소유해 ‘1가구 1뫼끼’라 할 정도로 보편적인 문화다.

뫼끼에선 삶의 방식도 달라진다. 뫼끼는 대부분 상하수도는 물론 전력 공급이 되지 않는다. 강이나 호수에서 물을 떠마시고 음식을 할 때는 모닥불을 피운다. TV나 휴대폰 등 전자 기기는 언감생심. 고립과 불편을 자처하는 핀란드인의 ‘뫼끼에라마(오막살이)’를 체험하기 위해 핀란드 최북단 라플란드의 키틸라를 찾았다.


■ 자발적인 불편함에서 찾은 자연의 낭만

핀란드의 뫼끼 문화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된 20세기 이후 생겼다. 급격한 산업화로 일상이 자연과 멀어지면서 도시 외곽에 뫼끼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휴가 때만이라도 번잡한 도시를 뒤로하고 자연에서 휴식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만난 이들은 “모든 핀란드인은 전기와 이웃이 없는 외딴 오두막을 꿈꾸게 됐다"고 전한다. 별도의 상수시설이 없는 뫼끼는 물가에 위치한다.

기자는 10여 분간 배를 타고 키틸라 아에케누스호(Aakenusjarvi)를 건너 약 70㎡ 규모의 뫼끼에 도착했다. 뫼끼는 거실과 주방, 사우나로 구성돼 있다. 뫼끼의 화장실은 대부분 집 밖에서 재래식으로 사용한다. 욕조나 샤워 시설도 없다.

뫼끼에서의 하루는 단순하다. 해가 뜨는 시간에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면 하루가 시작된다. 현지인처럼 호수로 흘러가는 샘물을 투박한 표주박처럼 생긴 손잡이 달린 컵 ‘쿡사(kuksa)’로 한 모금 머금었다. 나뭇잎 등 부유물을 피해 깊게 떠야 한다. 깨끗한 수질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청량한 맛이 느껴졌다. 실제 핀란드는 미국 예일대 환경법·정책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환경성과지수 수질 부문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뫼끼 인근에는 편의점이나 마트 등이 없다. 미리 챙겨가는 음식 외에 숲이나 강에서 양식을 구해야 한다. 라플란드 일대에는 야생 블루베리인 ‘빌베리'가 발에 치일 만큼 흔하다. 구름처럼 열리는 ‘클라우드베리’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두 베리 모두 7월부터 열매를 맺고 전자는 8월, 후자는 9월까지 수확할 수 있다. 그날 채집한 베리를 신선한 상태로 식사에 곁들이거나 잼과 주스를 만들어 먹는다. 핀란드에서는 자연 속이라면 누구든 어디에서나 자유롭게 베리 등 야생작물을 수확할 수 있는 ‘자연향유권’이 관습법적으로 보장된다. 이는 주인이 있는 사유지조차 예외가 아니다.

불이 필요한 요리는 직접 모닥불을 피워야 한다. 장작불에 구워 불향 가득 입힌 고기와 생선, 반죽을 넓게 펴 구운 크레페, 햄, 감자를 즐겨 먹는다. 물고기는 근처 강가에서 직접 낚기도 한다.

■ 북유럽 원주민 '사미'의 순록 요리


스칸디나비아 반도 라플란드의 원주민 사미족의 음식은 핀란드 식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핀란드 전통 요리 중 많은 경우가 사미족 음식에서 기원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순록을 키워 생계를 유지했던 사미족의 주요리는 순록 요리였다.

순록 고기는 지방이 적은 소고기와 질감이 비슷하지만 완전히 가축화된 동물은 아닌 만큼 야생동물 특유의 육향이 있다. 대부분의 순록은 목장에 가둬 사육하지 않고, 스스로 자연에서 먹이를 찾도록 방목해 키운다. 사료와 건초 대신 이끼와 비슷한 지의류(녹조와 균의 공생체)가 주식이라 고기의 맛도 가축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순록을 이용한 대표적인 요리는‘포론캐리스튀스’다. 얇게 저민 순록 고기를 동물성 지방에 볶아 풍미를 더한 다음 버터에 졸여 만든 음식이다. 마블링이 적은 고기 특성상 얇게 썰고 뭉근하게 끓여 식감이 부드럽다. 투박하게 구워 낸 전통 빵 ‘가코'나 감자를 곁들여 먹는다. 사미족의 집밥 격인 음식이다.

‘비도스'(Bidos)는 대표적인 잔치 음식이다. 작은 덩어리로 썬 순록 고기와 부속을 감자, 당근 등 채소와 오랜 시간 끓인다. 포론캐리스튀스가 불고기와 비슷하다면 비도스는 갈비찜과 비슷하다. 다양한 양념과 향신료가 들어가는 갈비찜과 달리 소금과 후추를 제외하면 별다른 양념이 들어가지 않는다. 사미족 음식의 보편적 특징이기도 하다.

사미족 전통 음식은 ‘라부'(Lavvu)에서 먹어야 제맛이다. 라부는 커다란 원뿔형 전통 천막을 말한다. 천막 중앙에 모닥불을 피우고 음식을 만든다. 천막 중앙은 연기가 빠질 수 있도록 뚫려 있다. 천막 둘레를 따라 놓인 벤치에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한다. 별도의 상이 없어 각자의 접시에 음식을 덜어 들고 먹는다.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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